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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 역사청문회를 읽고, 두 논점 요약과 나의 생각

저작시기 2007.11 |등록일 2008.02.07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고종은 과연 개혁군주였는가?
-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 사이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자본주의 맹아론부터 내재적 발전론까지
2. 소농사회론부터 식민지 근대화론까지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조선왕조의 제 26대 왕이자 스스로 대한제국을 만들어 황제를 자임했던 고종. 그를 비롯한 조선은 격동의 시기인 1852~1919년, 그 67년의 세월동안 이제까지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개혁을 요구받던 시기였다. 이는 조선왕조 500여 년간 그렇게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아무리 아둔한 자더라도 외세가 침입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으며 새롭게 다가오는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의 경제에 적응을 해야 했다. 이는 모든 백성의 왕인 고종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최근 고종과 명성황후를 다룬 영상매체의 개봉과 각종 저작물을 통해 한국근현대사학회에서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았던 조선후기와 대한제국시기를 조명해보려는 노력이 활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이유로는 실학사상이나 조선 초중반의 시대적 연구보다 연구가 부족한 까닭도 있었고, 또 최근까지 식민지역사가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여겨 의식적으로 피한 까닭도 있었다. 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역사라 하더라도 엄연히 한국의 역사임이 틀림없고, 그런 감정적인 문제를 떠나 객관적인 사실 속에 식민지 역사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학계 전반의 움직임이 불었다. 그리하여 우선 일제시대부터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고 별 일 아닌 사건으로 취급되었던 고종의 광무개혁과 대한제국시기가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일단 고종에 대한 그간의 평가를 보자. 상대적으로 아버지였던 흥선 대원군 이하응과 명성황후의 활약 탓에 고종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일례로 윤치호나 맥켄지는 “고종은 나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말해 고종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고종은 암우(暗愚,어둡고 어리석은) 한 황제”라는 인식은 아관파천과 같은 일련의 사건과 같은 시기 명성황후나 흥선 대원군이 보여줬던 행동과 비교된 고종의 행동 등으로 인해 정말로 그러했던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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