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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의 비교fp

저작시기 2008.01 |등록일 2008.02.05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위 자료 요약 정리
잘 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심사임당 [申師任堂, 1504~1551]
1) 온전한 덕, 두루 통한 재주
2) 자질과 재능
(1) 그림 재능
(2) 글씨 재능
(3) 예술적 환경
3) 후손과 작품
4) 신사임당의 삶
(1)효
(2) 정숙한 삶
(3) 인내심
(4) 교훈
5) 사임당의 업적과 교훈
(1) 자녀에게 가장 모범적이고 대표적인 현모(賢母)양처
(2) 남편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현명한 아내
(3) 강한 의지의 소유자

2.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1589]
1) 허난설헌의 불행
2) 시대와 불화한 천재 시인
3) 한이 많은 허난설헌
4) 문학사적 의의

3.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의 공통된 운명

4.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의 차이점
1) 사임당은 주로 그림을 그렸지만 난설헌은 주로 글을 썻다
2) 난설헌은 고된 시집살이를 했지만 사임당은 매우 편했다
3) 난설헌은 매우 고독했으나 사임당은 바쁘고 외롭지 않았다.
4) 사임당의 집안은 평탄했으나 난설헌의 집안은 안정되지 못하였다
5) 사임당은 자식복이 있었으나 난설헌은 없었다
6) 사임당은 50년이상의 긴 삶을 살았으나 사임당은 27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7) 지금도 신사임당은 위인으로 불리지만 난설헌은 비운의 여인으로 불린다

Ⅲ. 결 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서 론

율곡의 어머니이며 조선중기 대표적인 화가로 유명한 신사임당이 친정인 강릉을 아주 떠나 시가로 거처를 옮긴 것은 결혼한지 20년이 지나서였다. 시와 서화에서도 뛰어났지만 현모양처로도 잘 알려져 있어서 결혼과 동시에 `출가외인`으로, 오로지 시가를 위해 헌신했을 법한 그의 삶의 중심이 친정에 있었다는 것은 뜻밖이다. 이는 조선중기까지 만해도 처가살이가 보편적이었던 당시의 결혼풍습과 이를 둘러싼 사회상황이 가능케 했던 일이었다. 신사임당보다 60년 후에 태어난 허난설헌의 경우를 보면 상황이 많이 달라져있는 걸 알 수 있다. 규방의 고독, 구속에 대한 탄식 그리고 자신의 버려진 처지에 대한 한으로 가득 찬 일련의 시들은 그녀의 가시밭 같았던 시집살이를 그대로 증언해주고 있다. 조선후기에 정착한 시집살이 결혼제도 속에서 기혼의 여자들의 삶은 더 이상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한 여자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출가외인`이라는 말은 조선후기인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무렵에, 조선초기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성리학의 윤리가 널리 퍼지면서 정착된 것이었다. 그 전엔 결혼하면 남편이 아내 집에 가 살면서 자식 낳아 웬만큼 키운 다음 남편 집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결혼풍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의 여성은 재산상속에 있어서도 남자형제와 꼭 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집간 후에도 아내의 재산권은 철저히 보장되었고, 유교사회의 핵심인 제사권도 가지고 있었다. 허난설헌과 신사임당 이 두 명의 인물은 우리가 익히 알고 들어왔던 과거의 여인들이다. 이 여인들은 여자가 인정받지 못한 시대에 태어나서 천재성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헨렌켈러, 퀴리부인, 나이팅게일 등 외국에는 여성들이 매우 많지만 우리나라 여성의 위인은 매우 적다. 그래서 이 둘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두 여성의 차이점을 살펴보기 전에 이 두 여인의 삶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전국 여성노조 노보 27호
-허균ㆍ허난설헌 기념관
- http://kidriki.byus.net/uj.html
-http://kidriki.byus.net/uj.html
-http://blog.naver.com/sks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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