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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과 웨스트팔렌 조약

저작시기 2008.02 |등록일 2008.02.05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400원

소개글

30년 전쟁과 웨스트팔렌 조약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30년 전쟁
1) 30년 전쟁의 발단
2) 30년 전쟁의 전개과정
3) 30년 전쟁의 결과

2. 웨스트팔렌 조약
1) 웨스트팔렌 조약의 발단
2) 웨스트팔렌 조약의 내용

Ⅲ. 결론

본문내용

Ⅱ. 본론

1. 30년 전쟁
최대의 종교전쟁이며, 최후의 종교전쟁으로 그 기간은 대체로 4기로 구분되는데 전반의 2기는 종교적 색채가 짙고 후반의 2기는 정치적 색채가 짙다.

1) 30년 전쟁의 발단
독일에서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의 화의 후 곧 신·구 양교의 대립이 다시 일어나7세기에 접어들자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었는데 전란은 먼저 보헤미아에서 발발하였다.
보헤미아에서는 1609년 귀족들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로부터 신앙의 자유 승인을 얻었지만, 17년 페르디난트가 보헤미아왕위에 오르자 신교파를 압박하였으므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2) 30년 전쟁의 전개과정
전쟁의 경과는 황제파의 대전국에 따라 다음 4단계로 나뉜다.

(1) 보헤미아-팔츠시대(1618년 ~ 1624년)
1619년 보헤미아의 개신교도가 칼뱅주의자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를 보헤미아의 왕으로 선택하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바이에른군을 이끌고 보헤미아에 침공했다. 개신교 동맹측이 개혁교회와 루터교의 대립으로 발이 묶여있는 사이 황제는 로마 가톨릭 세력의 연대를 강화해 교황의 원조금과 에스파냐 지원군, 로마 가톨릭 동맹 측의 병력을 합세해 우위을 차지함으로써 이 시점에서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다. 1620년 11월 8일 개신교를 믿는 보헤미아군은 바이센베르크 전투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받고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크(프라하)는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프리드리히 5세는 브레슬라우로 퇴각하고, 개신교 제후는 토지를 몰수당해 개신교 동맹 세력은 완전히 굴복했다.

(2) 덴마크시대(1625년 ~ 1629년)
황제는 프리드리히에 대한 처벌로 영방의 라인팔츠와 오버팔츠에 있던 선제후위을 빼앗고, 새로이 전공을 세운 바이에른공 막시밀리안 1세가 선제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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