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한문학사상사 논문 요약

저작시기 2005.09 |등록일 2008.02.03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문학특강 시간에 논문을 요약했던 리포트입니다.
한문학사의 흐름과 그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목차

3. 과거제와 한문학
4. 고려전기 귀족문학
6. 무신집권기의 문학적 전환
7. 초기비평의 양상
9. 여말 선초의 관인문학과 처사문학

본문내용

나라에서 인재를 뽑는 최고의 수단이 과거에는 과거제였고 오늘날은 고등고시다. 옛날에도 의약, 복서 등과 같은 전문과목이 있었으나 문․무과가 단연 비중이 컸고 그중에서도 문과가 으뜸이었다. 그래서 문과에 급제하면 출세할 길이 많아 문과에 대한 문인들의 열망이 대단했다.
과거제가 중국의 제도여서 그 내용도 중국을 따라가게 되었다. 책문은 국가정책을 다루었으나 다른 유학경전을 다루는 의(疑)와 의(義)는 유교의 경학을 다루었고, 시․부는 주로 한문의 시와 부를 다루었다. 내용이 우리 것이어도 표현할 때는 책문은 중국의 사륙문으로, 시․부는 논설문의 고문체로 써야했다. 이렇듯 과거제도는 중국제도의 모방과 한문학에 특별한 능력을 요구했다. 이 말은 한문학에 능숙한 사람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입신양명의 최고의 길이 한문학에 있는 까닭으로 우리나라의 한문보급은 급격하게 늘었고 글자가 없었기 때문에 일반인도 한문을 숭상하게 되었다. 후에 국문보다 한문이 더 많이 쓰이게 된 것도 과거제도의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의 과거제도는 신라시대 원성왕 4년에 독서출신과를 둔 것을 효시로 볼 수 있다. 상중하 삼품으로 나눠서 합격시켰기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독서삼품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라인들은 본국에서 실시하는 과거뿐만 아니라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위해 실시한 시험 즉, 빈공과에도 응시하여서 50여명 이상 합격하는 영광을 누렸다.
과거제는 고려시대에 와서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다. 광종 9년에 후주 사람 쌍기를 지공거를 삼아 시․부․송과 시무책을 시험 보게 하여 진사 2인, 명경 3인과 의약․복서 2인을 뽑았다. 그 후 과거를 통해서만 인재를 뽑게 되었다. 현종 15년에는 각 주․현에서 예비시험에서 선발한 사람을 국자감에서 시험 보게 하고 다시 합격한 자는 과거를, 나머지는 돌려보냈다. 덕종이 즉위한 해에는 국자감시가 최초로 실시되었는데 시험내용은 부와 6운․10운의 시였다. 인종17년에 예부공원의 주에 의하면 우리나라 제술과는 시험의 3장에서 제외되었고 책론에는 운을 달지 않고 대우도 없어져서 시부학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