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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경제] 제일은행에서 SC제일은행까지.

저작시기 2007.11 |등록일 2008.02.02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제일은행의 연혁, 공적자금 투입정도 등을 기술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연혁
2. 제일은행 위기와 공적자금 투입
1) 한보 부도 사태
2) 1차 공적자금 투입
3) 2차 공적자금 투입
4) 3차 공적자금 투입
5) 풋백옵션에 따른 공적자금 투입
6) 제일은행의 2차 매각 - Standard Chartered
3. 결론

본문내용

2. 제일은행 위기와 공적자금 투입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외로 매각된 제일은행은 1929년「조선 식산은행」의 개인예금 업무가 분리되면서 영세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인「조선 저축은행」으로 창립, 1950년「한국 저축은행」, 1958년「제일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단 선발 시중은행이다. 90년대 초반 경기가 좋을 때까지는 시중은행 중 몇 안 되는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은행에다, 탄탄한 경영으로 선발의 몫을 제대로 한, 소위 `잘 나가는` 은행이었다. 공격적인 경영으로 사세를 확장, 경영 성적이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청탁에 의해, 그리고 철저한 심사 없이 이뤄진 공격적인 대출은 잔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효산, 유원건설, 우성그룹 등의 부도로 연이어 타격을 입은 데 이어, 지난 97년 은행 자기자본의 80% 이상을 쏟아 부은 한보철강이 무너지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이 사건은 한 기업에 쌈짓돈 거의 전부를 풀베팅한 세계 금융업계에서 고개를 저을 만한 사건이다. 게다가 기아의 부도 파장까지 겹치면서 결정적으로 나가떨어지게 되었다.

1) 한보 부도 사태
한보 그룹은 상아제약과 삼화신용금고 인수를 비롯해 95년 유원건설을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여 22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순위 14위의 재벌기업이었다. 한보철강은 94년 코렉스 설비 도입 등 당초의 제철소 건설 계획을 확대하면서 무리한 설비 투자를 지속하다가 차입금 과다(96년 6월 말 부채비율 : 1893%)에 따른 금융비용증가와 철강 산업 침체 여파 등으로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07년 부도 처리 되었다.
특히 한보철강이 무리한 사업 확장 과정에서 대표적인 정경유착기업으로 밝혀져 사회적 파문을 불러 일으켰는데 한보철강 총수 정태수는 정부 인사관계는 물론 금융계 인사 로비를 통해 특혜대출을 받아 98년 1월 차입금 규모가 1금융권 2조 4,000억 원과 2금융권 1조 7,000억 원 등 총 4조 8,600역원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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