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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빛과 그림자 ;이승만의 독재는 필요악이었는가.

저작시기 2005.10 |등록일 2008.01.31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한달동안 만든 자료입니다
잘쓰세요

목차

1. 이승만의 삶.
2.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3. 독재의 그림자
3. 이승만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일제의 강점기 동안 숨죽여온 우리 민족에게 ‘해방’은 그 자체만으로 경사였다. 그러나 준비 없이 맞이한 해방 공간에서 한반도는 또 다른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독립의 주체가 될 수 없이 주어진 미완의 독립과 분단의 고착화, 그리고 이념 대립의 폭력성은 남과 북에 별개의 정부수립이라는 결과를 가져 왔다. 1948년 미군정이 물러간 자리에 수립 된 남한의 단독정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첫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중심에 이승만이 있었다.
우리에게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와 장기집권의 독재자라는 양면성을 가진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분단의 비극과 민족의 분열, 그리고 1950년 6월의 전쟁 발발이라는 민족적 패닉상태에서 신속한 국가 체제 정비를 위해 독재는 필요악이었는가. 아니면 정치적 야욕을 위한 인간 이승만의 야망에 불과한 독재일 뿐이었는가. 이승만을 역사적 평가라는 저울 위에 올려놓고 본다면 독재정치와 그에 의해 파생된 갖가지 폐단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극명히 평가되는 업적까지 감안한 총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에 관한 대립된 평가에 대해 우리는 인간 이승만과 국부 이승만, 그리고 독재자 이승만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고자 한다.
1. 이승만의 삶.
이승만은 조선 말 1875년 고종12년 때 황해도 평산에서 명문대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3세 때 가족이 서울로 이사하게 되면서 그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는 학업에 수재였으며 동시에 근면과 노력을 다하는 정력가였다. 특히 어학에 취미와 재간이 있어 영어에도 상당한 실력을 배양하였고, 외국 선교사들과도 많이 접촉하였다. 한 때는 선교사의 국어교사가 된 일도 있었다.
이승만의 청소년 시기에는 한국이 외침 내환으로 누란의 위험을 벗어날 수 없는 국난이 극도로 격화하고 있었다. 일․청․러 3국의 한국 침략이 그 극에 달하였고 구습에 젖어 있던 탐관오리들은 매관매직, 부정축재에만 몰두하여 국가의 위기가 더욱 심했다. 그러나 갑신정변․독립협회운동 등과 같이 일찍이 구미유학 또는 일본시찰 등에서 신지식을 배운 소수 혁신파의 개혁운동이 계속됐다. 이승만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7년간의 미국유학시절에도 부지런히 미국 종교인, 학자,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인을 따라 다니면서 한국의 자주독립을 호소하였다.

참고 자료

이한우,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하), 조선일보사, 1996,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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