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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봉건적 토지제도의 발전

저작시기 2007.11 | 등록일 2008.01.08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6페이지 | 가격 1,900원

소개글

신라시대이후 토지제도의 발전과정과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다른 문헌을 참조하여 조사하여 정리하였다

목차

1. 신라 통일과정이 그 후의 토지제도 발전에 미친 영향

2. 정전제도(丁田制度)의 실시
- 정전과 구분전

3. 직전제도(職田制度)의 실시
- 신라의 직전-녹읍제도가 폐지, 재실시된 역사적 원인

4. 봉건적 토지 제 유형의 발전
1) 국가직속지의 확대
2) 왕실 직속지제도의 발전
3) 귀족계급에 의한 토지점유의 확장
4) 식읍제도의 발전
5) 사원전의 확대
6) 정전제도의 몰락과 소경리 농민들의 점유지의 감소

5. 신라통일 이후 대세의 발전과 토지관계 발전의 상호연관

본문내용

1. 신라 통일과정이 그 후의 토지제도 발전에 미친 영향

신라ㆍ고구려ㆍ백제 삼국의 통치계급들은 각기 더욱 많은 영역과 인민을 지배하려는 충동에서 출발하여 서로 타국을 병합하기 위한 전쟁을 오랫동안 계속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삼국의 인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동족간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국가의 통일을 달성하려는 염원에 불타고 있었다. 특히 상호 타국을 병합하려는 통치계급들의 전쟁의 혼란 중에 외국의 침략세력이 삽입되고 이에 의하여 국토가 점령되는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에 삼국 인민들은 힘을 합하여 외국세력을 물리치고 국가의 통일을 달성하였다. 삼국의 통일은 신라 주권의 승리로서 달성되었다.

상호병탄을 위한 전쟁이 벌써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또 백제ㆍ고구려의 두 왕조가 멸망한 이후에도 10여년간이나 전쟁은 계속하였다. 오랜 전쟁의 결과로서 인구의 희생 및 유리와 전야의 황폐 등의 현상이 혹심하게 진행되었다.
십수년간 침입하였던 당군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백제ㆍ고구려에서의 군대 및 일반인민의 희생과 생산력의 파괴는 혹심하였다. 또 이 두 나라의 인구들 가운데 당군에 의하여 납치된 수도 적지 않았다. 최후의 전승국인 신라 역시 인구의 대량적 감소와 유리는 면치 못하였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두 서신을 보면 전쟁 이후 신라의 농업생산이 극히 곤란한 형편에 빠지고, 특히 당군이 국내에 오래 주둔하고 있는 동안 그에 대한 후방수송과 접대에 막대한 곤란을 초래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 수가 있다. 인구의 현저한 감소와 전야의 황폐가 극심한 오랜 전쟁의 끝에 결국 신라가 국토를 통일하였다. 원래의 삼국 전체의 인구는 감소되고 전야는 많이 황폐화되었지만 신라가 새로 지배하게 된 영역과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신라가 전후에 실시한 제 정책, 특히 토지제도ㆍ조세제도 등에는 물론 종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역시 일정한 변화들이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사와 土地 (상) 박시형, 북한 사회과학원 발행 , 출판사 : 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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