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고려시대 신돈의 개혁정치

저작시기 2007.08 |등록일 2007.11.0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고려 시대 신돈의 개혁정치 내용입니다. 역사학(중세사) 리포트에 많은 도움이 되니까...ㅋㅋ많이 사가시길...

목차

Ⅰ.머리말
Ⅱ. 신돈의 등장과 개혁의 배경
1.신돈의 등장
2.신돈의 개혁 배경
Ⅲ. 신돈의 개혁 내용
Ⅳ.개혁의 결과와 의의
Ⅴ.맺음말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Ⅰ.머리말
14세기 후반, 공민왕(恭愍王)의 등장과 함께 대외적으로는 반원 정책이 단행되고, 대내적으로는 개혁정치가 이루어졌다. 개혁은 1351~59년 까지 8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공민왕대 개혁의 내용과 개혁을 지지한 사람들, 즉 이제현(李齊賢)이 공민왕전기와 관련하여 그리고 신돈(辛旽)이 공민왕후기와 관련하여 언급된다. 특히 신돈은 공민왕 14년(1365)에서 20년까지 약 6년간 공민왕의 명에 따라 왕을 대신하여 정권을 장악한 승려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에는 고려의 32대 임금인 우왕(禑王)과 33대 임금인 창왕(昌王)을 ‘신우(辛禑), 신창(辛昌)’이라고 기록한다. 고려의 종성(宗姓)은 ‘왕(王)’씨인데 왕을 ‘신’씨로 표현하는 것은 우왕은 신돈의 자식이며 창왕은 신돈의 손자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기록은 조선 개창 세력에 의한 것으로 그들이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자식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집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우가 신돈의 자식이였다면 신돈을 죽인 공민왕이 그를 후사로 삼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아들이 없으면 종친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 후사로 삼지 자신이 죽인 타성(他姓)을 가진 인물의 아들을 후사로 선택할 까닭은 없다. 이외에도《고려사》를 비롯한 각종 역사서에서 신돈은 여색을 밝히고 뇌물을 챙기는데 급급했던 요승으로 서술되고 있다. 따라서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미천한’, ‘글도 모르는’, ‘대역을 저지른’, ‘요사한’ 승려라는 식의 부정적인 인물로 알려져 온 것이다.
반면 신돈의 개혁가로서의 면모와 그의 개혁으로 이루어진 성과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도 자세히 기록된 곳이 없다. 실제로 신돈은 집권 시기 동안 사회 경제적으로 많은 개혁을 이루었고, 권문세족을 억누르며 일반민을 위해 개혁을 추진하여 ‘성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관들이 사대부들이었기 때문에 신돈의 개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요승이 아닌 개혁가로서의 신돈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논문
이숙경,「이제현 세력의 형성과 그 역할 -공민왕 전기(1351~1365) 개혁정치의 추진과 관련하여-」,『한국사 연구』64집(1989)
이성호,「여말 신돈의 개혁에 대하여」, 경남대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1983)
민현구,「신돈의 집권과 그 정치적 성격 (下)」,『역사학보』40집(1968). pp. 53-119.

이이화,『한국사 이야기 8, 개혁의 실패와 역성혁명』, 서울 : 한길사, 1999.
신정일,『한국사, 그 변혁을 꿈 꾼 사람들』, 서울 : 이학사, 2002.
역사문제연구소,『실패한 개혁의 역사』, 서울 : 역사비평사, 1997.
사회과학원 고전연구실,『북역 고려사』제 11권, 서울 : 신석원, 1991.
정성희,『인물로 읽는 고려사』, 서울 : 청아출판사, 2000.
박영규,『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서울 : 들녘, 1996.
한국중세사학회,『고려시대사 강의』, 서울 : 늘함께, 1997.
강만길 외,『한국사 5, 중세사회의 성립 1』, 서울 : 한길사, 1995.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