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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의 전말과 을미사변을 둘러싼 열강들의 간섭과 침투

저작시기 2007.06 |등록일 2007.10.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을미사변의 전개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사건의 전말을 주변국과의 관계를 통해
논문형식으로 재조명함.

목차

1. 머리말
2. 을미사변의 시대적 배경
3. 삼국간섭
4. 을미사변의 발발
5. 을미사변의 영향
6.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을미사변이란 조선주재 일본공사 미우라의 지휘 아래 1895년(고종 32) 8월 20일 새벽 일본군과 경찰·낭인배 등이 경복궁을 기습, 민비를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워버린 일본의 국제적 만행을 말한다. 갑신정변 이후 조선에 대한 청․일의 이권경쟁은 절정에 이르렀다. 1895년 청일전쟁 직후 러일전쟁의 발발 시기까지의 약 10년간은 세계국제 정치의 초점이 극동으로 몰려있었다. 한반도에 관해서는 조선에 대해 종주권을 행사하던 청국이 물러나고, 러시아와 일본이 상호 견제하는 새로운 세력균형체제로 전환되었다. 을미사변이 발발한지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이라는 다른 나라 자객들의 음모로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한 이 만행에 얽힌 국제적 이해관계를 살펴보고, 이 사건에 관해 일본이 조작하고 은폐한 모습들을 파헤쳐 보고자한다.
Ⅱ. 을미사변의 시대적 배경
1894 - 1895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벌였다.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청은 북양대신 이홍장을 보내 휴전을 요구한다. 일본 측은 이 요구를 거절했지만, 이홍장이 저격당해 부상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구미세력의 비난을 두려워한 일본은 휴전조약을 체결하고 마관조약(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의 내용은, 청나라는 ① 조선이 독립국임을 승인하고 ② 랴오둥반도(遼東半島)ㆍ펑후도(澎湖島)ㆍ타이완을 할양하며 ③ 2억냥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④ 청나라 내의 쑤저우(蘇州)ㆍ항저우(杭州)ㆍ충칭(重慶)ㆍ사스(沙市)를 개시(開市)하며, 개시ㆍ개항지에서 일본인의 상공업활동을 승인하고 ⑤ 청ㆍ일통상항해조약을 새로이 구미열강과 같은 조건으로 맺고, 일본의 치외법권, 편무적 협정관세율을 승인한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인직후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3국의 대일 간섭이 심화되었고, 일본은 랴오둥반도를 청나라에 반환하였다.

참고 자료

황선희. 2003, 「한국 근대사의 재조명」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2, 「러시아의 한반도 군사 관계사 : 영토확장·청일전쟁·러일전쟁을 중심으로」
양주연. 2002,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그 인식의 변화」
김상기. 1990, 「갑오·을미 의병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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