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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프로야구 선수협 협상에 관하여

저작시기 2007.06 |등록일 2007.06.16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협상사례 분석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갈등의 시작
3. 갈등의 재개
4. 갈등의 원인
5. 갈등의 해결
6. 마치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현대판 노비문서라고 일컬어지는 KBO 약관과 계약서에서 비롯된 선수와 구단과의 갈등이 표면으로 대두된 2000년 말 프로야구 선수협 파동은 야구팬으로서 협상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도대체 무엇이 선수와 구단의 갈등을 불러왔고 팬들을 노심초사하게 했는지 그 해결을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번 과제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갈등의 시작
일종의 선수노조인 ‘선수협’은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선수협이 구체적인 조직의 형태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88서울올림픽의 열기로 온 나라가 들떠있던 1988년 9월 13일이었다. 그 이전에도 일부 선수들 간에 그러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물밑 작업에 그쳤기 때문에 공식화 되지는 않았다. 이날 오후 2시, 롯데 소속의 최동원 선수(현재 ‘한화’ 코치)를 주축으로 유성의 온천장 호텔에서 총 142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약칭 ‘선수회’)’의 창립총회가 우리나라 선수협 활동의 시작이다. 총회에서는 최동원을 초대 회장, 최동원의 부친인 고(故) 최윤식씨를 고문으로 선출한 다음, 각 구단별로 5명씩의 대의원을 임명하여 조직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이와 함께 같은 달 30일에는 인천의 송도 비치호텔에서 대의원 총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한편, 설마 하던 일이 현실로 닥치자 각 구단들은 선수회는 프로야구의 근본을 뒤흔드는 존재라고 규정하고는 부랴부랴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야구단 사장들은 9월 20일과 23일 연거푸 모임을 갖고는 선수회에 가입하면 전원 제명을 시키기로 합의 한 ‘3대 강경 처리 안’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각 구단별로 대상선수에 대한 각개격파에 들어갔고, 심지어는 선수 부인들까지 만나서 회유하고 설득했다. 이러한 구단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선수회의 2차 모임인 대의원 총회는 성원 부족(정족수 44명에 20명 참석)으로 결국 무산되었다. 그 후,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10월 24일의 임시 구단주 총회에서 대의원 총회에 참석했던 20명으로부터 “향후에 선수회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 조건으로 재계약 방침을 확정하면서 프로야구가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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