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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기의 史通과 두우의 通典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6.14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중국 수,당시대의 역사서술가인 유지기와 두우의 생애와 각각의 저서인 사통과 통전의 구성과 영향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목차

Ⅰ. 유지기
1. 유지기의 생애
2. 사통의 성립
3. 사통의 공헌
4. 유지기의 영향
Ⅱ. 두우
1. 두우의 생애
2. 통전의 성립
3. 통전의 구성
4. 두우의 영향

본문내용

2. 사통의 성립

『사통』의 유지기 서문은 710년 2월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사고전서총목제요』는 『사통』이 710년에 완성되었다고 확신에 찬 주장을 하고 있는데, 언뜻 보면 이것은 설득력이 있다. 이 서문에서 유지기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비서소감이 되었다. ․․․․․․일찌기 사초를 첨삭하던 중 틈이 나면 사서를 검토⋅비교하였으며, 그것에 대한 나의 의견을 꾸준히 적어, 상자와 고리짝이 그 원고들로 가득찼다. 이에 나는 그것을 분류, 주제별로 정리하여 한 책에 기록하였다.”

이 경우의 ‘이에’는 그가 비서소감에 취임한 이후의 시기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때 그는 그 사이에 이미 상자와 고리짝을 가득 채운 역사에 관한 그 원고를 하나의 책으로 묶어 『사통』을 만든 것이다. 그가 비서소감에 임명된 정확한 연대는 유감스럽게도 단정할 수 없지만, 『사통』의 맨 마지막 편인 오시편에 의하면 - 이 편은 주로 그가 역사편찬총책임자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되었다 - 유지기는 중종이 서도 장안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3년 동안 동도 낙양에 남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대한 모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전으로 전달된 명령에 의해 장안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오로지 역사저술에만 전념하라는 명을 받았다. 이 때 그는 서문에 기술된 것처럼 비서소감에 임명되었다. 황제가 장안으로 귀환한 것은 706년 10월이므로, 유지기가 3년 후 즉 709년경에 그 자리에 취임하였다고 추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서문을 따른다면 『사통』은 709년 이후에 이미 준비가 된 그 이전의 자료에서 자연스럽게 편집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서를 보면 사정은 약간 다르다. “금상께서 즉위하셨을 때, 나는 다시 황제의 명을 받고 측천대성황후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그것을 저술할 때 나는 본래 의미를 계속 주장하였지만, 당시의 동료들과 감수귀신들은 항상 다른 의견이었으며, 이 견해의 차이를 조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아아, 나는 비록 나에게 합당한 자리에 있었으나 나의 아름다운 뜻을 세상이 받아주지 않으니 나의 이상은 실현될 수 없었다. 그로 인하여 나는 울적과 고독한 분만에 가득차게 되었으며 스스로 위안할 길도 없어, 항상 뒷전으로 물러나 더이상 의견도 표시하지 않고 저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죽은 후에 아무도 내 뜻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을 두려워하여, 물러나 개인적으로 이 『사통』을 편찬해 내 뜻을 알리려고 한 것이다. ” 『사통』을 편찬하게 된 동기는 단지 역사에 대한 그의 애호뿐만 아니라 『측천무후실록』의 편찬과정에서 드러난 역사서술에 관한 견해차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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