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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의 윤리설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6.14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홉스의 윤리설-국가관-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1) 홉스의 생애와 저술
(2) 홉스의 윤리적 이기주의
(3) 홉스의 자연 상태의 개념
(4) 사회 계약과 자연법
(5) 홉스의 국가관
(6) 홉스의 국가관의 양면성

본문내용

홉스의 윤리설

* 신을 중심으로 한 질서와 권위가 지배하였던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로 접어들면서 각각의 개인이 권리와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과 욕구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태도라는 이기주의적인 생각도 함께 등장하였다. 그러나 사회는 한 사람의 개인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들이 함께 형성하는 것이므로 개인의 이익의 추구가 상충할 경우 이를 어떻게 조절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기주의적 윤리설을 바탕으로 하면서 각 개인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전형적인 경우를 우리는 홉스의 윤리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홉스의 생애와 저술

*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1588년 영국의 공업 지대인 맴스베리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에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을 전공하였는데 철학뿐만이 아니라 여러 과학에도 관심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귀족 카벤디쉬 가문에서 가정교사로 일하였다. 그 후 프랜시스 베이컨의 개인비서로 일하기도 하였으며 데카르트의 ≪성찰≫에 대한 반박 중 하나를 쓰기도 하였다. 50대 초반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저술들을 발표하는데 그 과정에서 몇 차례의 정치적 난항에 휘말리게 된다. 그가 1640년 발표한 ≪법의 기초≫라는 저술이 절대 왕정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의회주의자들에 의하여 처형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파리로 망명하여 11년간 파리에서 생활하였다. 청교도 혁명의 성공 후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크롬웰을 위하여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왕당파의 미움을 사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회파로부터도 적대시되는 곤경에 처하였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 다양한 저술들을 발표하였지만 은둔에 가까운 독신 생활을 하면서 미신과 종교를 멸시하고 교회의 영향을 줄여 나갈 것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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