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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어학]누항사 를 통해서 본 사대부체험의 의미

저작시기 2007.06 |등록일 2007.06.13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시조가사론 시간의 박인로의 누항사를 분석하고 그 안에 들어간 자연속의 사대부의 체험에 관한 의미에 대한 비판적 분석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박인로는 명종 16년 음력 6월21일 경상도 영양도천에서 선비 박석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박인로의 가문은 양반이었으나 그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높은 벼슬을 하지는 못하였다. 박인로는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라면서 글공부를 했다. 공부도 하고 농사일도 도우면서 학습과 무술 훈련 등을 했다고 한다. 소년시절의 무술훈련은 그가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전선에 나가 공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박인로는 1599년에 무과시험을 보아 급제하고 수문장, 선전관등의 벼슬을 지내였다. 그는 청렴한 성품으로 항상 가난하게 살았다. 자기 임무를 마치고 조라포를 떠날 때에 그의 행구는 몹시 초라하였으며 안장도 낡았고 머리에 쓴 갓 또한 낡아 헤어진 것이었다고 그의 행장에 쓰여 있다. 그는 후에 벼슬자리에 남아서 자기의 포부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게 된다. 당시 양반관료들은 임진조국전쟁의 쓰라린 역사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란에 시달린 백성들에 대하여 더 가혹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였으며, 정권쟁탈을 위한 당파싸움에 열중하였다. 박인로는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영양군 도천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박인로는 농사를 지으면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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