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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역사속 사랑이야기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7.06.12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역사속 시대와 종교간의 다른 개념의 사랑론에 대해서 작성한 레포트

목차

1. 교부들과 사랑
2. 이슬람과 사랑
3. 힌두교와 사랑
4. 서양 중세의 사랑
5. 르네상스와 사랑
6. 종교개혁과 사랑
7. 자유와 사랑

본문내용

기독교에서 교부들이 말하는 성은 더럽고 추하고 죄스럽고 치욕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어져왔다. 왜 이러한 사상이 나오게 되었는지, 또 그들은 왜 그렇게 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는가? 기독교는 유대교를 이어받은 종교이며 유대교에서는 기독교에서처럼 사랑에 관한 금욕주의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유대교 시대 많은 영웅들은 당시 일부다처제를 누렸으며 사랑이나 결혼 그 자체를 거부하거나 금기시 하지는 않았다. 십계명에 있는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율 또한 고대법이 갖는 일반적인 계율일 뿐이다. 여인의 간음을 치죄로 여긴 것 또한 당시 여인은 남자들의 소유물이며 전리품의 하나 일뿐이라 여겨 여인들로 인한 남자들의 싸움을 자제 시키려는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방법으로 쓰였을 뿐이다. 성서 <아가서>에서는 노골적인 사랑과 성에 대해 예찬을 할 정도로 개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을 갈구하고 개방적인 성생활을 물려받은 기독교가 사랑을 배격하게된 것은 로마시대에 이르러 사랑과 성에 관한 문제에도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간의 사상적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상적 갈등은 추상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의학에 까지 퍼졌다. 켈수스라는 의학자는 정규적인 성행위는 신진대사를 위해 매우 좋은 일이며 삶의 활력을 주는 촉진제라고 하였으며, 이에 반하여 의학자 소라노즈는 영원한 순결은 건강을 지켜주고 성행위는 본질적으로 건강에 해롭다는 반론을 하였다.
시대에 만연하고 있었던 에피쿠로스적 향락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당시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권력이 있는 로마의 귀족들이었으며, 이들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주된 세력이었으므로 기독교로서는 이러한 향락주의의 반대편에 설수 밖에 없었다고 보아진다. 기독교는 당시 성적으로 타락해 있었던 귀족들에 대한 하나의 개급혁명이라 할 수 있었으며, 영원한 쾌락을 보장하는 일종의 보험조건으로 현세의 부와 사치, 쾌락을 외면하고 성스러운 삶을 취하였던 것이다. 결국 신앙과 남녀 간의 성적향락은 상극관계로 굳어지게 되었다. 성적인 쾌락을 금기시하던 기독교에서 예수의 탄생을 신비화 시켜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예수는 쾌락의 성행위가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출생하게 되며, 이는 곧 삼위일체설의 기본이 된다. 교부들은 하느님은 마음으로 육체를 완벽하게 지배하도록 만들었으며 아담과 해와는 정신적 사랑만하도록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며 에로티시즘이나 쾌락은 뱀의 유혹에 비유하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순결과 정절을 존중하는 것이야 말로 예수의 지고의 계시이며 축복이라 하였고, 테르툴리아누스는 정절을 더럽히는 것은 죽음보다 무서운 죄라고 주장하였다. 결혼한 부부라도 성교를 통해 쾌락을 느낀다면 그마저도 죄악이라고 주장한 성 아우구스티누스, 쾌락의 거부를 위해 거세를 주장한 오리게네스, 성욕을 느끼자 가시덤불에 몸을 던져 피를 흘림으로써 몸을 정화한 성 베네딕트, 이렇듯 성적금욕은 기독교의 주된 미덕이며 중요한 교의가 되었다. 금욕은 고결한 심적 상태에 도달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첫 번째 조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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