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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의 대여행과 한의 서역경략

저작시기 2007.04 |등록일 2007.06.12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동서문화교류사 발표 소논문입니다.

목차

1. 서론
2. 장건의 대여행과 한의 서역경략
3. 한의 서역경략의 영향
4. 서역과의 교역으로 전래된 문화
5. 결론

본문내용

한 대의 서역경략은 전한 무제 때 장건의 서역착공(西域鑿空)을 계기로 시작되어 후한 때 반초(班超) 부자에 의한 서역경략에 이르기까지 260여 년간 단절적으로 추진되었다. 기원전 138년에 장건은 서천(西遷)한 대월지와 결맹(結盟)하여 흉노를 협공할 목적으로 대월지에 무제의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제1차 서역사행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숱한 우여곡절 끝에 13년 만에(BC 126) 귀조(歸朝)하였다. 그가 장기간의 사행과정에서 얻은 서역에 관한 미증유의 지식은 미래의 서역사행과 한조의 서역경략에 적절하게 쓰였다. 귀향 후 1년만인 기원전 125년에 장건은 서남제이(西南諸夷)의 통상로인 촉도(蜀道)를 개척하기 위해 사천(四川)에 파견되었으나 토착민들의 거절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이 제2차 사행 후, 장건은 서역에 관한 자신의 지리지식을 활용하여 기원전 123년에는 세 번째 사역여행을 떠나 대장군 위청(衛靑)의 흉노 토벌에 동참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장건은 이 흉노 토벌전에 이어 오손(烏孫)과 결친(結親)하여 막북(漠北)으로 밀려난 흉노를 계속 압박할 목적으로 기원전 119년 다시 한 번 오손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의 제4차 서역행인 이 오손 유인사행은 소기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장건 귀국 후 한조의 위세에 눌린 오손은 친한(親漢)을 결단하였고, 사행시 서역 여러 나라에 파견한 부사(副使)들 도 귀국할 때 해당 나라의 사신들을 대동함으로써 마침내 한과 서역제국간의 공식적인 관계가 트이게 되었다.

참고 자료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사계절, 2002.
정수일, 씰크로드학, 창작과 비평, 2001.
나가시와 가즈도시,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민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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