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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어학]시조의 자유시 전환 , 핸드아웃자료.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6.09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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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 폴더안에 있는 시조의 자유시전환에 대한 리포트의 핸드아웃자료입니다. (발표용)
학생들에게 나누어줄수있는 자료입니다.

목차

- 윤선도,정철,황진이의 시조분석과 자유시전환 -
◆ 작가알기 ◆
◆ 시조 분석 ◆
◆ 이해와 감상 ◆
◆ 상황 설정 ◆
◆ 작가알기 ◆
◆ 이해와 감상 ◆
◆ 상황 설정 ◆
◆ 작가알기 ◆
◆ 이해와 감상 ◆
◆ 상황 설정 ◆

본문내용

◆ 작가알기 ◆
윤선도 ( 尹善道 1587~1671(선조 20~현종 12)
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본관은 해남(海南). 서울 출생.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낸 유심(惟深)의 아들로 숙부 유기(惟幾)의 양자가 되었다. 남인으로 1612년(광해군 4) 진사초시에 합격하였고, 14년 승보시(陞補試)에서 장원하였다. 치열한 당쟁으로 20여 년의 유배생활과 19년의 은거생활을 하면서 많은 시조를 지었다. 그 중 경원에서 지은 것과 영덕에서 풀려나 고향에서 지은 <오우가(五友歌)>가 수록된 《산중신곡》과 《산중속신곡》, 그리고 노후에 은퇴하여 지은 《어부사시사》 등의 시가는 한국어에 새로운 뜻을 창조하여 활용한 뛰어난 서정적 작품이다.
정철(鄭澈)․박인로(朴仁老)와 함께 조선시대 삼대가인(三大歌人)중 한명. 다른 두 사람과는 달리 가사(歌辭)는 짓지 않고 75수의 단가와 시조만 창작하였다.그는 자연을 문학의 제재로 채택한 시조작가 가운데 가장 탁월한 역량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되며, 작품에 나타난 자연은 엄격한 유교적 윤리세계와 관련을 가진다. 그러나 자연과 직접적인 대결을 보인다든지 생활현장으로서의 생동하는 자연은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그가 자연이 주는 시련이나 고통을 전혀 체험하지 못하고 유족한 삶을 누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서로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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