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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문]도산서원 답사기행문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7.06.09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300원

소개글

직접 찍은 사진들과, 도산서원의 공간설명 감상 등이 담겨있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본문내용

Ⅰ. 서론
푸르른 나무가 우거지고, 옹기종기 작은 스케일의 장방형 공간들이 내 동선을 감싸 안는 그 아늑한 공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도산서원. 04년 여름에 동아리 사람들과 한여름에 그곳을 찾은 적이 있다. 땡볕에 모자를 썼지만 햇빛이 눈이 부셔서 인상을 찌푸리고 한손엔 노트를 연신 부채질 해가며 벌건 얼굴을 해가지고 돌아다니던 때였다. 그 시원한 아늑함과 새파란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건축을 처음 접해서 떠난 답사였고, 그 전에 큰 규모의 절들을 보다가 만난 도산서원 인지라, 그 아늑함 스케일이, 그 편안함이 그 이후로도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한국 건축사 수업시간에 답사를 다녀와야 했을 때 그곳에 꼭 다시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업을 핑계 삼아 나는 가고 싶었던 곳을 다시 갈 수 있었다. 더욱이 설계반 사람들과 답사겸 MT를 떠나게 되었는데, 나의 적극추천으로 같은 반 사람들과 도산서원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고작 1학년때여서, 아무것도 모르고 떠났지만, 나름 3학년이 된 지금 다시 찾은 그곳을 나는 얼마나 제대로 볼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나는 답사를 떠났다.

Ⅱ. 본론
1. 개요
도산서원 : 사적 제 170호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산 61
특징 : 서원 양식을 정립한 최초의 서원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1557년(명종 12년)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짓던 도중 1558년 8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서울로 올라가면서 건물의 설계도 옥사도자한부를 벗 이문량에게 주면서 중 법련을 시켜 마무리하게 했다. 그러나 법련이 갑자기 죽고 정일이라는 중이 계속 일을 맞아 1561년(명종 16년), 이를 완성하였다. 그 후 제자 정사성이 입학할 때 그의 아버지가 역락서재를 지어주었다. 여기에 하고직사가 덧붙여진 것이 도산서당의 모습이다.
1570년 퇴계가 세상을 떠나고 3년상이 지나자 제자들은 선생을 모실 사당과 서원을 짓기로 결정해서 사후 4년인 1574년에 서원 창건을 시작했다. 그 다음해인 1575년 선조 임금이 한석봉의 친필 현판을 하사하여 사액서원이 되었다. 건물들이 모두 낙성된 것은 1576년이었다. 1819년(순조18년)에 동광명실, 1930년에 서광명실이 세워졌다. 1969년 5월 도산서원 일원을 사적 제 170호로 지정하고 두 번의 보수공사를 거쳐 1970년 12월 8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참고 자료

도산서원 전교당의 건축형식과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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