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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삼국과 가야의 성립

저작시기 2007.06 |등록일 2007.06.09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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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사회의 형성과정을 보면 군장국가, 연맹왕국 다음으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가 성립되었다.
우리나라의 고대국가라고 볼 수 있는 삼국과 가야의 성립을 시조설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목차

1.머리말
2.삼국과 가야의 시조 설화
3.삼국과 가야의 고대국가 성립과정
4.끝맺음

본문내용

원(原)고구려인들은 위만 왕조 고조선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한과 연결하여 한의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했고, 한의 입장에서는 강성한 고조선을 견제하고 나아가 흉노와 원고구려 세력의 연결을 막고자 하여 군을 설치하려 하였다. 그러나 비용과 노동력이 너무 들어 그만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고구려연맹은 이같이 한과 교류를 시도하다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지만 곧 이어진 한의 고조선 정복과 낙랑, 진번, 임둔의 3개 군(郡)의 설치가 있자 다시 중국 군현으로 편제될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양측의 타협 속에서 다른 군이 설치된 기원전 108년의 다음해인 기원전 107년에 고구려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현도군이 설치되었다. 고구려 연맹은 자율성 확보를 기반으로 하여 곧 한의 식민정책의 실상을 간파하고 오히려 현도군을 축출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리하여 기원전 75년에 현도군은 고구려인들의 공격으로 보다 중국 방향으로 중심지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 기원 1세기 초에 왕망(王莽)이 변방의 종족들을 억압하자 고구려연맹은 이에 저항하면서 독자성을 확보하게 된다. 1세기 후반 태조대왕 때에 이르러 대체로 5부를 중심으로 한 연맹체에 계루부 출신의 왕이 왕권을 다른 부(部)들에까지 행사하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왕실이 중심이 되어 정열적인 정복사업을 추진하여 영토는 확대, 고정되어갔다. 종래의 족장들은 이제는 왕의 귀족으로서 존재하였다. 이 태조대왕대에 고구려는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고 보고 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중국(후한)은 고구려의 국가성장을 막고자 하였다.

참고 자료

교양국사연구회/ 1994/ 이야기 한국사/ 청아출판사
일연/ 1994/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김기홍/ 1993/ 새롭게 쓰는 한국고대사/ 역사비평사
강봉룡외/ 2002/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솔
김재선외/ 1999/ 한글 동이전/서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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