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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서거정의 생애와 문학관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7.06.09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서거정의 생애와 문학관을 다룬 레포트입니다.
한시를 풍부하게 다루었고 주석도 확실하게 달려있는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서론

2. 서거정의 생애와 인문 의식
1) 서거정의 생애
2) 인문의식

3. 서거정 시문학의 특징
1) 관각문학적 특징
2)‘閑’의 정서

4. 동인시화의 편찬과 용사론
1)동인시화 편찬의 동기와 의의
2) 용사론
3) 用事와 관습적 표현

5. 필원잡기와 태평한화골계전
1) 필원잡기 작품의 내용과 그 의의
2) 필원잡기에 담긴 인문관
3) 태평한화골계전의 내용과 의의
4) 골계전의 웃음원리와 그 예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서거정은 조선 세조에서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문물이 가장 잘 정비되고 안정된 시대를 살며 한 평생을 관료로서 살았던 인물이다. 국문․한문학계에서는 이 시기를 국가가 주도한 문예 열풍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러한 시대 상황에 참여하여 수준 높은 결과물을 생산해 낸 훈구관료들의 문학적 경향을 높이 평가해왔다. 서거정은 이러한 훈구관료의 대표적 인물로서 대각문학을 비롯하여 각종 국가 편찬사업을 이끌어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이에 우리는 서거정의 생애와 대각문학의 주도자로서의 모습을 살펴보고 나아가 서거정의 삶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2. 서거정의 생애와 인문 의식

1) 서거정의 생애

서거정은 조선 세종(世宗) 2년(1420)에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달성,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안주목사(安州牧使) 미생의 아들로, 어머니는 양촌 권근(權近)의 딸이었고 그의 누이도 최항(崔恒)에게 출가하는 등 그의 집안은 당시의 공신(功臣)들과 인척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그의 집안은 당시 명문(名門)으로 꼽혔다. 여섯 살 때부터 글을 읽고, 시를 지어 신동이라고 불렸다. 19세(1438년)에 진사과와 생원과에 잇달아 합격하여 관료로서의 포부를 펼쳐 나갔다.
서거정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은 34세(1453년)에 일어난 계유정난(癸酉靖難)이었다. 계유정난에는 당시 집현전의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서거정은 당시 모친상으로 인해 복상(服喪)중이었기 때문에 현실의 극한 갈등을 다소 피하기는 했지만, 결국 그는 절의를 지키는 사육신과 생육신을 따르지 않고 계유정난의 주역인 한명회․신숙주․권남의 편에 서서 현실적인 노선을 택한 이후 순탄한 벼슬살이를 계속하게 된다.
그는 48세부터 예문관 대제학을 겸직하였는데, 이때부터 죽기 전까지 23년간 문형(文衡)의 자리에 있었다. 이에 나라의 전책(典策)과 사명(詞命)이 모두 그의 손에서 쥐어지게 되었으며, 주요 관찬서도 그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게 되었다. 관찬서 이외에도 그는 동인시화(東人詩話),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필원잡기(筆苑雜記)와 같은 개인문집을 남기는 등 생전에 남긴 저술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 이처럼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서거정은 특히 문장에 재능을 보인 관료로서, 당시 중국 최고의 문장가 기순에 대응할 만한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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