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인문]독도영유권 문제

저작시기 2007.05 |등록일 2007.06.08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역사과 부전공 과목 들으면서 작성한 레포트 입니다.
독도에 대한 자료 수집과 저의 개인적 의견을 뒤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1. 독도와 관련된 기사 내용과 독도에 대한 시각

2. 독도 영유권 문제

3. 독도의 중요성
1)경제적 중요성
(1)해양 자원
(2)천연가스, 하이드레이트
2)지질학적 중요성
3)군사적 측면의 중요성

4. 외국 언론들의 입장

5.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우리의 반증
1)일본의 주장
2)우리의 반증

6. 독도가 우리 땅인 역사적 증거
1)삼국사기
2)세종실록 지리지
3)숙종실록

7.영토분쟁과 관련된 국제 판례

8.나의생각


Ⅲ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말할 때 ‘가깝고도 먼 나라’ 라고 표현을 한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마음의 거리는 아주 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본에게 바라는 것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의 죄과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이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뉘우침의 자세는 더욱 더 보기 힘들다. 현재 일본의 발전 뒤에는 우리의 희생을 딛고 일어선 대가가 있다. 1950년 6.25전쟁 때 패전국인 일본은 군수물자를 받아 경제적 기반을 잡았다. 경제력이 막강하면 우기는 것도 통하는 것이 국제사회이다. 우리는 일본을 단순히 적대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본이 가진 군사와 경제력의 강력한 힘을 기억하면서 독도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Ⅱ본론

독도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계속 언급되고 있는 문제이다. 민감한 영토문제인 만큼 5월28일에 실린 기사 내용을 시작으로 독도문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독도 영유권` 신라 때 이미 통용돼 있었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영유권 인식은 신라시대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을 정복한 512년 이전부터 형성됐다는 주장을 담은 저서가 국내 학회를 통해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독도 영유권원’을 연구해온 선우영준(前수도권대기환경청장) 박사는 지난 12일 한일 관계사학회 발표를 통해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된 뒤 공물을 바치는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의미하는 `우산무릉`(于山武陵)이란 명칭이 신라시대에 널리 통용돼 한반도 귀속 영토로 인식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본 외무성 등은 1900년대 초까지 한국인들은 독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주장해 왔고 국내 학계에서도 우산도에 대한 인식은 조선 초기인 1400년대 초에 이르러 성립됐다는 게 정설로 돼 있으나 이번 주장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 인식 시기를 900년 이상 앞당기는 것이다. 28일 선우 박사에 따르면 `고려사지리지` 울진현 조의 울릉도 내용 중 `一云 于山武陵 本二島 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달리 말하기를 우산과 무릉이 본래 이도라고 한다. 두 섬 간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있고 맑으면 곧 멀리 바라다 보인다)이란 문구가 나와 독도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

참고 자료

뒷장에 표기함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