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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표상으로서의 광개토왕비문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6.08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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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근대 텍스트로서의 광개토왕비문

근대에 되살아난 텍스트
근대 일본의 텍스트로서의 비문
근대 한국의 텍스트로서의 비문
텍스트에 대한 회의
텍스트의 내부로
텍스트의 복원

고구려 텍스트로서의 비문

텍스트의 형상과 쓴 사람의 의도
비문의 컨텍스트와 무훈 기사
텍스트로서의 비문과 독자 공동체
비문의 컨텍스트와 왜

맺음말

본문내용

광개토왕비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지린성 지안시에 지금도 우뚝 서 있다. 일찍이 일본 육군은 이 비석을 일본에 반입하여 왜군의 패배를 기록한 이 비석을 일본 국민들 눈앞에 보여줌으로써 고대 일본의 대륙 진출 추이를 자세히 알게 하고, 러일전쟁 후의 정세에 국민적 규모로 대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환기하는 데 유용하게 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남북한에서는 복제품을 적절한 장소에 전시함으로써 비석에 적혀 있는 광개토왕의 위업을 오늘날의 한민족의 긍지로 여기며 역사의식의 육성에 크게 활용하려 하고 있다. 또 비석이 있는 중국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유물로서 극진하게 관리된다.
이러한 광개토왕 비문이 각국에 있어 극히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적혀 있다는 해석에 의거하고 더욱이 국민에게 널리 알릴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가진 텍스트로서 주목받고 해독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또 그러한 텍스트의 성립을 전제로 저마다 독자의 해석을 하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각국이 그것이 국민 교육에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이제 광개토왕비문은 고구려의 텍스트라는 사실을 초월하여 근대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 여러 국가에 의해 자기 국가, 민족의 컨텍스트에 따라 해석되어 이용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비문에 대해 고구려 텍스트로서의 내용 해석을 시도해 보면, 비문을 둘러싼 이제가지의 논쟁은 근대 동아시아의 각국(일본, 남북한, 중국)의 역사학 연구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 그 자체가 더 선명해질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난 반세기에 걸친 광개토왕비문의 논쟁을 길잡이 텍스트로 하면서 아울러 고구려 텍스트로서의 비문 해석을 탐구함으로써 근대 텍스트로서의 광개토왕비문의 표상을 비춰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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