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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6.06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두보의 시와 사상이 잘 정리되었음

목차

1. 두보의 생애
2. 두보의 시세계
1) 애정(愛情)·우정(友情)
2) 한정(閒情)·술회(述懷)

본문내용

그의 나이 44세 되던 천보(天寶) 14년 안 녹산(安祿山)의 난리가 났다. 이 반란은 파죽지세로 파급되어 금시에 동관(潼關)이 무너지고 장안이 함락되고, 양 국충(楊國忠)이 피살되고, 양 귀비가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을 하기에 이르렀고, 현종은 촉(蜀)으로 피난을 갔다. 그야말로 천지가 뒤바뀌는 변란이었다. 전후 약 8년 간을 이끌어온 이 난리 속에서 전란 중의 모든 참상과 역경을 세밀히 목격하고 체험할 수가 있었으니 그의 사회시의 제재(題材)는 더욱 풍부했고 사실적인 기교도 더 진보되었다. 그 뒤 숙종(肅宗)이 영무(靈武)에서 즉위할 때, 그는 영무로 가다가 도중에서 뜻밖에 적도(賊徒)들에게 갇히어 하는 수없이 홀로 장안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의 〈애왕손(哀王孫)〉․〈애강두(哀江頭)〉․〈춘망(春望)〉등 시는 모두 이때 전란으로 황폐하고 혼란한 장안의 모습을 그린 유명한 작품들이다. 그 이듬해 그가 46세 때 그는 봉상(鳳翔)으로 달아나 숙종을 배알하고 좌습유(左拾遺)의 벼슬을 얻었다. 그대 쓴 〈희달행재소(喜達行在所)〉3수는 그가 적중(賊中)으로부터 도망쳐나올 때의 상황과 심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너무나도 절실하고 애통하다. 〈술회(術懷)〉시도 이때의 자품으로 혼란함과 향수를 그렸는데 지극히 침통하다. 그 뒤 그는 방 관(房琯)의 일로 말미암아 죄를 얻었으나 곧 용사를 받아 귀가하게 되었다. 그때 그의 가족들은 부주에 있었다. 그의 〈북정(北征)〉과 〈강촌(姜村)〉두 편의 시는 이때 지은 걸작이다. 그 해 겨울 드디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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