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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귀속문제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6.02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발해사귀속문제에 대하여 2007년 상반기까지 나와있는 주요자료를 검토하여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내용상의 더 자세한 사항은 목차를 참고하세요.

목차

§1. 서론
○ 발해의 역사

§2. 본론 - 발해사 귀속문제에 대한 각국의 논쟁
[1] 중국
[2] 일본
[3] 러시아
[4] 한국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역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발해국이 창립된 때로부터 13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의 만주 지역에서 천년 대국 고구려를 이어 고구려 - 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기본 흐름을 마련하고 고구려의 국권회복을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였던, 약 200여 년간 해동성국으로써 그 위용을 내외에 널리 시위하였던 국가가 바로 渤海(698~926)이다.

○ 발해의 역사
발해(渤海)라는 나라는 698년에 건국되어 926년에 멸망한 나라로서 230년 가까이 통일신라와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었다. 668년에 당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한지 한 세대가 경과한 뒤 고구려 장수였던 대조영이 고구려 사람들과 돌궐인, 그리고 대렬을 이끌고 세운 나라이다. 나라 이름은 처음에 진국이라 하였으나 713년 당나라로부터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되고 나서 발해로 고쳐 불렀다.
발해에는 모두 15명의 왕이 있었다. 그러나 대조영부터 13대왕까지는 문헌 기록에서 확인이 되지만 그 이후의 왕들에 대해서는 몇 명의 왕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왕이 15명일 뿐이다.
발해사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왕(高王) 대조영이 길림성 돈화현 부근의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건국하였고 그의 아들인 2대 무왕(武王)은 대외정복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3대 문왕(文王)은 57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문물 제도의 정비에 힘을 써서 국가적 기틀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돈화 동모산에서 상경으로 그 다음으로 동경으로 천도하였고 말년에는 적대국이었던 신라에서 사신이 파견되면서 점차 교류가 시작된다. 4대 왕부터 9대 왕까지는 내분기에 해당되는데 귀족 세력이 강화되어 왕이 자주 교체 되면서 별다른 지적이 보이지 않았다가 계보가 다른 10대 선왕(宣王)이 즉위한 818년을 경계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이 때로부터 13대 왕에 이르기까지 전성기를 구가하여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이란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발해의 중심지는 만주 동부지역이었으나 오늘날의 연변조선족 자치주가 대체로 이에 해당한다. 전성기에는 영역이 동쪽으로 연해주, 서쪽으로 요동반도, 북쪽으로 송화강까지 미쳤고 남쪽으로 대동강과 용홍강을 잇는 선을 경계로 신라와 접경하였으며 이에 따라 전성기에는 영토가 사방 5천 리에 이르렀다. 발해의 융성은 14대왕 대위해(大瑋瑎)까지 이어졌으나 15대왕 대인선(大諲譔)에 이르러 내우외환으로 점차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마침내 926년 1월에 거란에 멸망당하였다.

참고 자료

이형구, 『발해 연안에서 찾은 한국 고대 문화의 비밀』, 김영사
송기호 (1993) 발해를 찾아서, 서울: 솔 출판사
이기백 외 (1988) 한국고대사론. 서울: 한길사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1994) 한국고대사 산책. 서울: 역사비평사
서병국, 『발해제국사』, 서해문집, 2005
한규철 『발해의 대외 관계사』 신서원
이성시 (1996) 만들어진 고대. 박경희 역
발해사 연구를 위하여 (2000) 『발해사 연구를 위하여
전쟁기념관 KBS 동아일보사 (1998) 『발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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