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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유부벽정기 전문

저작시기 2007.04 |등록일 2007.05.31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취유부벽정기 현대어 전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평양은 옛 조선의 도읍이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정벌한 후 기자(箕子)를 찾아가니 기자는 무왕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설파하였다. 이에 무왕은 조선을 기자에게 주고 임금으로 봉한 후 신하로서 대하지 않았다.
평양의 빼어난 곳을 말하자면 금수산(錦繡山)과 봉황대(鳳凰臺), 능라도(綾羅島), 기린굴(麒麟窟), 조천석(朝天石), 추남허(楸南墟) 등이 있는데 모두 옛 유적들이다. 영명사(永明寺)의 부벽정(浮碧亭)도 그중 하나이다.
영명사는 동명왕이 건립한 구제궁(九梯宮)의 터에 있다. 평양성 외곽에서 동북쪽으로 20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큰 강을 굽어보고 넓은 평원을 바라보며 아득히 끝을 찾을 수 없으니 진정으로 빼어난 경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놀잇배와 장삿배가 저녁 무렵 대동문(大同門) 너머 버드나무 숲이 우거진 물가에 정박하면 사람들은 조류(潮流)를 따라 올라와서 이곳을 마음대로 구경하고 극진한 즐거움을 맛본 후 돌아가곤 했다.
정자 남쪽에는 돌을 깎아 만든 층계가 있는데 그 왼편은 청운제(靑雲梯), 오른편은 백운제(白
雲梯)라고 새기고 화주(華柱)를 세웠으니 호사가들이 감상할 만했다.
천순(天順) 초년, 송경(松京)에 홍씨 성을 가진 부유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는 젊고 용모가 수려해 의젓한 풍도(風度)가 있었으며, 또한 문장에도 뛰어났다.
중추절이 되자 친구들과 함께 실을 사기 위하여 포목을 배에 싣고 성 안에 들어와 강가에 정박해 두었다. 성 안의 이름 있는 기생들은 모두 성문 밖으로 나와 그에게 눈길을 주었다.
성 안에 살던 오랜 친구인 이 서생은 그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거나하게 취한 홍 서생은 배로 돌아갔는데, 밤공기가 서늘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장계(張繼)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을 떠올리니 맑은 흥취를 참을 수 없었다. 작은 배를 타고 달빛을 받으며 노를 저어 올라가며 흥취가 다하면 돌아가리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부벽정 아래에 도착하였다.
홍 서생은 뱃줄을 갈대숲에 매어 두고 사다리를 타고 누대에 올라갔다. 난간에 의지하여 경치를 바라보며 맑은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이때 달빛은 바다와 같이 넓게 비추고 물결은 비단과 같이 곱게 흔들렸다. 기러기는 물가 백사장에서 울고 학은 소나무에 내린 이슬에 놀라니, 그 서늘한 기운은 맑고 넓은 하늘나라 궁전에 올라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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