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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카노사의 굴욕

저작시기 2007.03 |등록일 2007.05.30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카노사의 굴욕과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카노사의 굴욕 - 그레고리우스 7세와 하인리히 4세의 피할 수 없는 충돌
2. 중세의 철학 -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본문내용

1. 카노사의 굴욕 - 그레고리우스 7세와 하인리히 4세의 피할 수 없는 충돌

● 성직 서임권의 전통
교황 레오 3세가 800년 크리스마스 날에 성 베드로의 성당에서 샤를마뉴(Charlemagne)를 황제로서 대관식을 거행해 주었을 때에 비로소 중세 유럽은 고대의 로마에는 못 미칠지언정 나름의 의미있는 통일을 이룩해 냈다. 과연 새로운 중세 제국이 탄생하는 데 있어서 그 주도권이 교황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혹은 프랑크 왕국의 궁정에서 비롯되었는지 하는 문제 기독교적 교리에 따르면 지상의 과업을 완수하고 하늘로 가기 전, 예수는 그의 첫 제자인 베드로에게 천국을 대신할 열쇠를 건네며 지상의 권력을 양도하였다. 베드로가 카톨릭 교회의 첫 교황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그 후의 몇 백년간의 계승문제는 매우 불확실하다. 따라서 교황의 권력을 입증하는 것으로는 이보다 <콘스탄티누스의 증여> 문서가 더 많이 거론되었고 그레고리우스 7세 또한 이를 근거로 자시의 지위를 피력하였다. 330년경 비잔틴으로 거처를 옮기며 교황 실베스테르와 그 후계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권리를 양도했다는 이 문서에 따르면 서유럽의 모든 “황제권위의 화려함과 우리 지상 권력”은 교황에게 속한 것이 된다. 이 문서의 실재적 가치 여부를 떠나 이를 사실로 가정한다고 하면, 서유럽은 교황의 것인가, 이를 양도한 로마 황제를 계승한 프랑크 왕국의 황제의 것인가?
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지만, 아무튼 이 사건은 중세시기를 나누는 몇 가지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초기의 황제들은 자신들을 ‘지상에서의 神의 대리자들’로서 간주했는데, 즉 세속사 뿐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업무까지도 통치할 수 있도록 신의 임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왕은 고위 성직자들에게 거대한 토지를 하사하고 또 그 토지에 대한 세속적인 통치권을 부여하였다. 세속된 제후들은 세습권(hereditary)을 통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한 반면 고위성직자들은 전적으로 국왕의 의지에 따라서 선택되고 임명되었다.
다시 말해, 게르만 인들의 난립을 뚫고 중세의 통일을 이룩한 프랑크 왕국부터 그 이후의 여러 제국들은 중세 유럽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인 기독교 신앙을 자신들의 정치력과 결합시킴으로써 제국의 안정을 도모했던 것이다. 여기서 황제는 친히 새로운 주교를 주교직에 임명하면서 주교에게 종교적인 관직의 상징물인 주교반지와 지팡이를 ‘수여`(investiture)하였다.
이러한 신권적인 군주정은 교회세력에게도 유일한 해결방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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