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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시대의 기독교인 박해와 배교 그리고 청산

저작시기 2007.05 |등록일 2007.05.30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뒤 우리나라에서 당시 로마시대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 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조사하게 되었다.
이 레포트에서 일제 식민지시대의 기독교인 박해와 배교에 대한 내용을 조사하였고 그 청산에 대해서는 나의 생각과 신학 전공수업시간 수업내용을 토대로 쓰도록 하였다.

목차

1.들어가는 글

2.박해
3.배교
4.분열
5.청산

6.맺는말(나의 의견)

본문내용

박해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나라에도 천주교가 전해지게 되었다. 뒤를 이어, 기독교 각 종파들이 앞을 다투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기독교는 1884년 매클래이 선교사에 의해서 전해진 감리교이다. 그를 필두로 장로교, 루터교, 침례교, 성결교 등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대부분 1900년대 초에 들어왔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교육과 병원 사업에 주력하여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끌게 해주었다.
1909년 한일 합방이 이루어져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일제는 서구와 연계된 기독교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이 관할하던 교회와 기관들이 일제의 완전한 한국 지배에 걸림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제는 먼저 교육 분야에서 기독교를 옥죄었다. 1938년 3월 조선교육령의 반포로 미션계 학교들이 폐교와 더불어 신사참배를 하기 시작했고, 7월에는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창립되고, 교회의 예배와 행사에서도 황국신민화적 내용이 포함되어 가는 이질적 현상이 나타난다.

기독교는 일제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교세를 팽창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에 `해서교회총회사건(海西敎會總會事件)`과 1911년에 `105인 사건`을 만들어 기독교 지도자 7백여인을 투옥하여 박해하니 교인이 크게 줄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장로회 공의회는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를 창설하고 부흥회를 열어 만주 산동까지 선교하여 그 때 천칠백여명의 세례교인을 얻었다.

참고 자료

○ 김영재, 한국교회사, 이레서원, 2004
○ 새 역사 50년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2006
○ 김승태, 조선교회가 섬긴 3위 `하느님, 돈, 일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2
○ 한국기독교 100년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역사편찬위원회, 1992
○ 친일파 99인, 반민족연구소, 돌베개, 1993

● 한국기독교회사 http://www.kcm.co.kr/korchur/korch-history/
● 기독교한국침례회 http://www.koreabaptist.org
● 구세군대한본영 http://salvationarmy.or.kr
● 한국기독교총연합회 http://www.cck.or.kr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http://www.kehc.org
● 예수교대한성결교회 http://www.sungkyul.org
●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http://www.naz.or.kr
● 성산 신학연구실 cafe.naver.com/sungkyul
● 원광대학교 사학과 http://mahan.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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