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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중국의 근대화 이야기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5.30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이 리포트는 제가 중국근대사의 이해란 과목을 수강하면서 작성한 것입니다. 중국의 근대화과정이 많이 드라마틱하기에 중국근대사의 시작인 아편전쟁부터 시작하여 양무운동, 의화단운동, 태평천국운동에 이르고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제 개인적인 소견을 달아 작성하였습니다. 중국근대화과정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라는 리포트를 필요로 하신 분들께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본문내용

태평천국 다음으로 발생한 근대화운동은 양무운동이다. 양무운동을 말할 때 역시 중체서용(中體西用)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말 자체가 한계라 하겠다. 중심은 그대로 두고 형태만 바꾸겠다고 하니 이 운동이 실패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우리나라도 개화기에 우리 것을 바꾸지 못해 결국 강제로 일본에게 당했는데, 중화사상이 수천 년이 이어져 내려온 중국의 사상이 오죽 견고했겠냐만은 그들은 아직도 세계의 중심은 그들이며 아무도 우리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양무운동이란 근대화과정의 의의는 서양의 문물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이다. 두 차례 전쟁의 패배이후에 자신들의 화력이나 모든 것이 서양에 밀린다고 인정한 것은 큰 의의라 하겠다. 그래서 자강과 부강을 표방하며 혁신운동을 벌여 초기엔 무기 제조, 함선 제작, 유학생 파견, 외국어학관 설립 등의 자강운동을 펼쳐 보이고, 1870년대와 1880년대엔 부강을 강조하며 광업과 철도 개설 등 운수사업에 주력했으나 결국은 양무파 관료들인 증국번, 이홍장, 좌종당 등의 한인관료가 나라를 위한다는 대의를 방패로 자기 개인의 군대를 위해 돈을 사용하고 그 돈은 청 스스로가 국민들에게 거두어들이거나 본래의 재정이 아닌 서양의 차관으로 개혁을 하려했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고 실패할 수밖엔 없었던 운동이었다. 여기서도 바로 관료가 자신의 권리를 더 챙기는 행태를 보여 나라는 어찌되든 간에 개인 혼자 부를 축적하는 문제가 보이는 것이 문제이다. 양무파의 이홍장은 여기서 얻고 챙긴 힘으로 뒤에 이어지는 운동에 이름이 계속 나온다. 그러나 이런 이홍장과 같은 한인관료가 말단 한직에서 벗어나 청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양무운동이 갖는 의의이다.

참고 자료

참고자료는 없고 여러 운동들을 보고 제 개인적인 의견을 넣어서 조선의 근대화과정과 비교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표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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