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민족개조론의 춘원이광수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5.28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일제지배당시 민족개조론을 제창하던 춘원 이광수의 사상과 친일행위에 대한 이해

목차

『서론』
이 광 수 그는 누구인가 ?

『본론』
이광수의 친일활동 - <자치론과 연정회>
일제시기에 전개 된 이광수의 사상 - 민족개조론의 정체
일제 시기에 전개 된 이광수의 사상 - 문명 조선의 구상

『결론』
이광수는 식민지 侯 우리 사회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가 ?

본문내용

조사를 통해 얻은 생각
일제 시대에는 조선의 완전한 식민지 제작을 목표로 갖가지 사상적 탄압을 자행되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일제의 만행에 우리 민족의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참여하였음은 물론, 오히려 일제의 구상보다 더 철저하고 더 강하게 일제 식민지 사상을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아래에 살펴 볼 춘원 이광수 역시 친일의 압박에 민족 지도자로서의 주체성을 잃었음은 물론 더 나아가 민족을 버리고, 실리를 따른 인물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친일 사상단체의 중직을 맡아 민중에게 그릇된 사상을 전개로 우리의 독립을 방해하였다. 이광수의 생애와 그의 사상 그리고 그의 친일행각을 살펴보고 그의 그러한 그릇된 행동이 현재에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 광 수 그는 누구인가 ?

1892년에 태어난 이광수는 동학혁명・청일전쟁・갑오경장 등의 사건이 그가 두 세살 때에 일어났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외세에 눌려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로웠던 때였다. 이 어려운 시대에 그는 가난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무능하고 허황된 사람이었고 그의 어머니 역시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장손 며느리 이면서도 제수하나 제대로 차릴 줄 몰랐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여의였다. 아버지가 콜레라로 생을 마감함과 동시에 8일 뒤에 아버지를 따라 세상을 하직했다.

1902년 고아가 된 후 동학(東學)에 들어가 서기가 되었으나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1904년 상경하였다. 이듬해 친일단체 일진회의 추천으로 도일, 메이지학원에 편입하여 공부하면서 소년회를 조직하고 회람지

참고 자료

www.pcic.go.kr / www.empas.com
이광수의 생애 및 사진자료 참고
일제하의 사상탄압 ( 임종국 - 평화 출판사 )
역사와 사회 ( 한국역사연구회- 이광수의 농촌계발과 문명조선의 구상 ) <- 논문자료 참조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