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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몽양 여운형 연구

저작시기 2007.04 |등록일 2007.05.28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사상과 활동 연대기별로 정리하였고 독립운동과 건국운동으로 크게 양분하였다.

목차

사상
활동
Ⅰ. 독립운동
Ⅱ.건국운동
평가

본문내용

사상

여운형이 세간에 알려진 연구에 비해 그에 대한 평가는 실로 다양하다.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주사회주의자. 중간파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그의 정치사상은 중간좌파 혹은 온건좌파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평가는 당연히 노선과 정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놀라운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신앙과 삶의 자취를 보면 1907년 무렵 상동교회와 접촉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고 또한 승동교회의 클라크 선교사의 도움으로 평양신학교 2년 과정을 수학하기도 한 그는 1914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을 조직하는 등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확인하면서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됐다. 그러나 그는 ‘소련적’ 사회주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선의 상황에서는 민족해방을 선취한 후에 점차적인 사회개혁 및 민주혁명을 실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몽양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민이 주인되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이념이든 주체적·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여운형의 사상을 규정함에 있어 강문구(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몽양의 변혁사상이라고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여운형의 사상은 일제치하를 통틀어, 그리고 길지 않은 해방공간에서 분명 유연하고 탄력적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여운형의 정치노선 혹은 정치적 진술은 극단의 좌우 세력이나 다양한 정파로부터 갖가지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그의 정치노선은 현실적이고 동시에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타협과 협상을 병행할 수 있는 입장으로 연결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진보적 성향의 대중정당론으로 나타난다.
여운형의 지향은 자주적 민족통일국가의 성취와 완성이며, 이것은 일제치하에서 추구했던 완전한 민족독립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이 확고한 목표에의 지향과 현실적이고 포용적인 중간적 대중정당노선을 연결해 주는 매개적 고리는 좌우합작에 의한 민족통일전선전략이었다.
그러나 이 원칙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과 수단, 노선에서 여운형은 누구보다도 유연했고 현실적이었으며 심지어 타협적이었다. 원칙에 대한 확고한 지향과 신념, 이를 성취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탄력적인 정치노선의 결합은 해방정국에서 여운형 사상의 주요 특징이다.


활동

Ⅰ. 독립운동
① 신한청청년단 결성
여운형은 1886년 경기도 양서면 신원리 묘곡에서 여정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세 때인 1900년 미국인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에 입학했으나 1901년 민영환이 세운 홍화학교로 전학했고, 1903년에는 당시로는 먹고 살 길이 보장되는 우체학교 ‘우무학당’으로 옮겼다. 하지만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로 민영환이 자결하자 우무학당마저 자퇴해 버렸다.

참고 자료

■ 참고문헌

<단행본>

윤무한 2006 『인물대한민국사』 나남출판
여연구 2001 『나의 아버지 여운형』 김영사
이기형 2004 『여운형 평전』 실천문학사

<논문>
양동안 2004 「여운형의 민족통일노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참고자료
http://www.mongyang.org/content_0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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