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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6.25전쟁 휴전협상을 둘러싼 국제관계 : 포로문제를 중심으로

저작시기 2007.05 |등록일 2007.05.27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6.25전쟁 휴전협상을 둘러싼 국제관계 : 포로문제를 중심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6.25전쟁 휴전협상을 둘러싼 국제관계 : 포로문제를 중심으로
1. 휴전협상의 시작
2. 포로 송환원칙의 대립
3. 포로 심사와 공산측의 반발
4. 중립국의 개입
(1) 인도의 중재와 미국과 공산측의 타협
(2) 한국정부의 반발
5. 평가
Ⅱ. 제네바협약이란 무엇인가?
1. 제정 배경
2. 협약 제118조의 해석
3. 한국전쟁의 포로처리방식은 무엇을 남겼나?
Ⅲ. 생각해볼 문제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첫 번째로 왜 포로교환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6.25 휴전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포로교환 문제는 협상 초기에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네바 협정을 기본으로 하여 이미 정해져 있었던 방법대로 처리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포로교화 문제로 인해 협상은 지체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념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미국과 중국은 냉전 구도를 둘러싸고 이데올로기적 자존심 대립을 하고 있을 때였다. 포로교환 문제에 있어서 서로의 입장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공산국측은 전쟁 포로 중 포로의 수를 정확하게 공표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엔군은 유엔군 포로를 모두 송환시켜 줄 것인지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었고, 미국은 당시 제 2차 세계대전의 포로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소련에 송환되지 못한 독일군과 일본군 포로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한국전쟁에서의 포로교환은 확실히 하고자 하였다. 또한 포로 규모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유엔군측은 약 15만 여명이라 밝힌 반면, 공산국측은 약 1만 여명이라 밝혔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포로 수를 정확하게 공표하지 않은 공산국측의 포로 수를 신뢰할 수 없었기에 미국과 유엔측은 전원송환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수적 차이가 큰 상황에서 전원송환이 형평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또한 포로교환 문제 외에도 대만 문제로 인해 중국과 미국은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포로교환이 간단히 교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에서 이념적 전쟁이라 할 수 있었기에 서로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자료

*하영선 外,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2005.
*김용욱, 한국역사에 있어 전쟁피로자,피납자의 송환문제: 임진,정유왜란, 정묘,병자호란, 6·25전쟁의 사례를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44권 1호, 2004, pp.117-141.
*정인섭, 한국전쟁이 국제법 발전에 미친 영향 : 포로송환문제를 중심으로, 법학 115호, 2000, pp.217-236.
*조성훈, 미국 자료를 통해 본 휴전 협상의 지연 요인 연구 : 포로 문제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79호, 2000, pp.49-70
*조성훈, 한국전쟁 중 공산측의 유엔군 포로정책에 대한 연구, 한울 6호, 1997, pp.217-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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