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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주영, 그의 리더쉽

저작시기 2007.04 |등록일 2007.05.27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있고 건강한 한, 나에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 정주영 -

목차

1. 현대(정주영) 연구에 관한 개관

1) 정주영의 그룹 ‘현대’의 역사
2) 정주영의 일대기
3) 정주영의 업적

2. 정주영의 경영원칙과 리더쉽

1) 타고난 검소함과 절약정신
2) 성실함과 신용
3)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
4) 무섭게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강력한 리더쉽
5)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6) 민족애적 기업가 정신
7) 함께 가는 리더
8) 책 임
9) 모험 정신, 1%의 가능성

3. 정주영의 리더쉽유형

4. 정주영의 영향

본문내용

3) 정주영의 업적
정주영은 ‘현대를 통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냈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현대에서 많은 일들을 이루어냈다. 그 일들은 하나같이 그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이 무모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일들이었으나 정주영은 그의 ‘하면된다’는 굳은의지와 리더쉽으로 역사를 이룩하였다.

고령교 공사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고가 6.25 전쟁통에 파손되자 정보는 1953년 이를 복구하기로 했고 전쟁 전에 현대건설을 세웠던 정주영은 이를 맡았다. 그러나 이 공사는 정주영에게 골칫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계절에 따라 다른 낙동강 수심과, 예기치 못한 홍수, 열악한 장비시설 등이 공사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모두 공사를 중단하자고 말했으나 정주영은 ‘사업에는 신용이 최우선’ 이라는 신념으로 집을 팔고 얻을 수 있는 빚은 모두 얻어 1955년 계약한 기한보다 2개월 늦게 공사를 완공했다. 적자는 6500 만환이었는데 그는 고령교 공사 결손 빚을 청산하는데 2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부로부터 크게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현대건설은 그 후에 정부공사 대부분을 수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태국 진출
국내 정치 상황이 급변동하면서 세무조사 등의 곤욕을 치른 정주영은 해외에서 활로를 찾았다. 첫 성과가 19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 낸 것이다. 선진 16개국 29업체 와 겨뤄 따낸 이 공사는 공사 계약금이 국내외 공사 전체 계약액의 60%를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큰 것이다. 태국의 엄청난 비와, 나쁜 토질, 기술의 낙후성 등 때문에 공사는 진척이 안됐고 현대건설은 또 다시 큰 손해를 보는 시련이 닥쳤으나 이 것은 나주에 고속도로 공사의 경험이 되어 경부 고속도로를 수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베트남 감란만 준설 공사 등을 거치면서 현대 건설은 해외 진출을 확장했고 나중에 ‘중동특수’를 일궈낼 바탕이 됐다.

주베일 항만공사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한 주베일 항만공사는 공사 금액만 당시 우리나라 예산액의 절반에 맞먹는 9억 3000만 달러(당시 환율 4600억원)로 세계 건설 업계가 ‘20세기 최대의 역사’로 불렀던 일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9억 3114만 달러로 낙찰 받았다. 공사를 진행하던 정주영은 모든 기자재와 콘크리트 슬래브를 울산 조선소에서 제작해 세계 최대 태풍권인 필리핀 해양을 지나 걸프만까지 대형 바지선으로 운반하는 생각을 하였다. 오일 쇼크로 침체돼있던 울산 조선소에도 일거리를 주고 공사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내놓은 극악 처방이었다. 그리고 19번에 걸쳐 이 거대한 바지선 운반작업은 시행됐고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낸 뒤 현대건설은 쿠웨이트 휴아이바항 확장공사, 두바이 발전소 등 중동 일대 대형 공사를 잇달아 수주하게 되었다. 1975년 중동 진출 뒤 1979년까지 현대는 약 51억 6400만달러를 벌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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