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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부터 레이건까지의 외교정책

저작시기 2007.05 |등록일 2007.05.26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트루먼부터 레이건까지의 외교정책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외교정책에 대해서 썼습니다. 그럼 모두 A+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목차

1. 트루먼과 봉쇄정책의 태동(1945-1953)
2. 아이젠하워(1953-1962) ; 반공과 반혁명의 세계화
3. 케네디(1961-1963)~L.B. 존슨(1963-1969) ; 냉전의 세계화
4. 닉슨(1969-1974), 포드(1974-1977)
5. 카터 시대의 외교정책(1977~1981)
6. 레이건 시대의 외교정책(1981-1989)

본문내용

1. 트루먼과 봉쇄정책의 태동(1945-1953)
1)전후 미국의 힘
-제1차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유렵은 전쟁으로 전국토가 폐허로 변하였고 많은 산업시설들이 파괴되었다. 거기에 비해 미국은 전시 경제에 힘입어 엄청나게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등 강력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은 그들의 식민지에서 더 이상의 지배가 어려워 지면서 퇴각하게 되면서 힘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힘의 공백을 미국이 맡게 되면서 소련과의 피할수 없는 경쟁과 대립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전후 새로운 국제질서인 냉전을 낳게 됩니다.

2)전후, 미․소 관계의 악화 -대립관계의 형성
-독일·이탈리아·일본등의 동맹국에 맞서 싸우면서 미국과 소련은 동지애를 느낄정도로 가까웠다. 그러나 얄타회담 이후 동부유럽에서 소련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스탈린의 의도가 보이면서 미소관계는 대립되기 시작한다.
-스탈린은 동유럽을 소련의 안보에 중요한 지역으로 생각하면서 동유렵의 어떤 나라가 서방진영과 경제적ㆍ군사적 동맹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동부 유렵문제, 특히 폴란드 문제였다)
-독일의 처리문제였다. 독일에 많은 피해를 입은 소련은 자국 산업의 재건을 위해 독일에 상당한 수준의 배상금 지불을 강요하자고 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유럽의 재건을 위해서는 독일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독일 산업의 재건을 느끼게 되었다. 포츠담 회담이래 트루먼 행정부는 독일을 농업국으로 만들려던 루스벨트 시대의 이른바 모겐소플랜을 폐기하고 그 대신 신속한 독일 재건 계획에 착수했다
-그리스․터키․이란 문제
-동아시아 문제 -일본과 중국

참고 자료

미국외교정책사(루즈벨트에서 레이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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