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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석주명

저작시기 2002.01 |등록일 2007.05.26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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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니, 개성 지방 나비는 물론 전국 각 지방의 나비를 골고루 수집할 수 있었다.
석주명이 국제적인 나비 학자로 올라선 데에는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 도움이 컸다. 1931년 어느날 미국 앤드류스 공룡 탐사대의 일원인 모리스 박사가 몽골에서 탐사를 끝내고, 일행과 떨어져 일본으로 가다가 개성에서 열차를 내렸다. 경성에 내린다는 것이 실수로 개성에서 내린 것이다. 개성 전도단이 모리스 박사를 안내한 곳은, 개성의 명물로 등장한 송도 고보 박물관이었다. 원홍구의 조류 표본과 석주명의 나비 표본이 모리스 박사의 얼을 빼놓았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 나비 표본과 연구 자료를 보낸다는 조건으로 모리스는 석주명에게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광복이 되기까지 석주명의 채집 여행은 거의 미국 박물관들의 재정 후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수집한 나비 개체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석주명에게는 아주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제대로 된 곤충 도감이라고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마쓰무라 쇼넨(松村松年) 박사의 『일본 곤충 대 도감』(1931년)이나, 우치다 세이노쓰케(內田淸之助)가 만든 『일본 곤충 도감』(1932년)에 는, 석주명이 보기에 크기나 모양에 약간 차이가 있을 뿐 분명히 같은 종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나비가 제각각 다른 이름을 달고 있어 종류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곤충 연구의 출발 점인 분류학, 그것도 어느 개체가 어떤 이름을 가진 종류인지 알아보는 데서부터 꽉 막혀 버린 것이다.
그것은 당시 학자들이 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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