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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김시습의 문학세계

저작시기 2007.05 |등록일 2007.05.23 한글파일한글 (hwp) | 22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한문학사 수업을 들으면서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논문, 단행본을 여러개를 연구한 끝에 작성한 레포트이니 많은 도움 되실겁니다. 김시습의 생애, 문학관, 작품분석, 한문학사에 미친 영향 등을 담았습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김시습의 생애
2. 김시습의 사상과 문학(금오신화)
3. 김시습의 문학관과 작품

본문내용

2. 김시습의 사상과 문학

김시습은 『금오신화』의 작자로 알려졌지만 뛰어난 시인인데다가 유불선에 대한 입장과 생각을 나타내는 글을 다수 남겨 조선 초기의 문학과 사상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문집으로는 『매월당집』이 있으며, 이 밖에 전기소설집인 『금오신화』가 있다. 그의 사상적인 실상은 대부분 문장을 통하여 밝혀져 있지만, 수많은 한시에서도 그의 생애와 사유세계를 찾아볼 수 있다.
김시습을 가리켜 이이는 ‘심유적불’이라 하였고, 이자는 ‘행유적불’이라고 하였다. 이는 그의 사상이 유교와 불교의 두 요소가 서로 뒤섞여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이를 두고 퇴계 이황은 “세상을 피하고 괴이한 짓을 하는 하나의 이인”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는 근본을 유교에 두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불교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는 산사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지만 불교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산림처사로 자처하였다. 다음의 글에서 그러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본디 불교․노장과 같은 이단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중들과 짝하게 된 것은 그들이 원래 물외인이요 산수도 물외경이라, 내가 물외에 놀고 싶어서 중들과 더불어 산수 사이를 노닐었습니다.
-「상유자한서」
유교적인 사유체계를 기초로 삼아 거기에 불교사상을 적용하여 이해하려는 태도는, 조선 초기 유교와 불교가 교체되는 과도기에 살았던 신흥지식인으로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당연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문학계에서는 이처럼 불문에 의지한 것을 두고 가정과 벼슬, 그리고 돌아갈 고향을 갖지 못한 그가 생활의 방편으로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가 불문에 의지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불교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유가의 합리주의로 불교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자기 합리화의 논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에게서 사상의 괴리를 엿볼 수 있으니, 모순된 현실의 삶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 김시습의 인간적인 약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율곡 이이는 김시습이 불가의 심오한 뜻을 두루 통하여 비록 노승, 명승이라도 그의 예봉을 당해내지 못하였다고 말했다. 김시습이 저술한 『잡저제일범십장』에는 10장으로 된 문답식 불교이론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 내용은 부처의 자비정신을 제대로 갖춘 나라의 임금만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중생을 구제한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김시습은 어디까지나 불교를 유교적인 논리로 해석하여 정치를 올바로 실현하는 방편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는 또한 불승은 국정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 밖에 그가 불교에 관해 저술한 것으로「묘법연화경별찬」, 「십현담요해」등이 있다.
김시습은 술을 즐겨 마셨으니 계율을 지키고 규칙적인 금욕생활을 고집하는 승려라기보다는 불교의 심오한 교리를 추구하는 사상가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그는 「신귀설」,「태극설」,「천형」등을 통하여 불교와 도교의 신비론을 부정하고 적극적인 현실론을 펴고 있다. 실제로 도선사상에도 상당한 지식이 있었으며 선도를 수련을 통하여 체득한 인물로 알려진다.『해동전도록』이나 『해동이적』에는 그가 도교적 인물로 기술되어 있을 정도이다.
김시습은 대체로 유교사상이 드러나는 글을 많이 썼다. 「고금제왕국가흥망론」․「고금군자은현론」․「고금충신의사총론」에서는 치국평천하의 원리를 말하였고, 「인재설」․「생재설」․「명분설」에서는 경세제민의 방법을 논하였다. 또한 「인군의」․「인신의」․「애민의」․「덕행의」에서는 경전과 고금 성현의 논설을 비판하고 주석하였다. 이 가운데 「고금군자은현론」에서는 성현이 세상에 나가거나 은둔하는 것은 도를 행할 수 있는 의로운 세상이냐 도를 행할 수 없는 불의의 세상이냐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도를 행할 수 없을 때는 본인만이라도 깨끗이 하는 것이 어진 자의 도리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단종의 양위사건 이후 세상을 등진 이유를 여기서 짐작할 수 있다.

참고 자료

1. <김시습의 시문학 연구> 충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국문학 전공 김연세. 1994
2.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정병헌․이지영. 2006
3. <김시습의 시문학 연구> 김연수. 1994
4. <김시습 평전> 심경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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