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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나의탄생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5.23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프리다 칼로 의 나의탄생이라 작품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나는 병이 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은 행복하다"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중 하나인 프리다 칼로가 남긴 말이다.
그녀의 이름인 ‘프리다’는 독일어로 ‘평화’를 의미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일생동안 한 번도 평화롭게 한 적이 없었다.
프리다 칼로는 1907년 7월 6일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와 어머니 마틸데 칼데른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프리다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것은 사진작가였던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의 기질을 타고 났다고 볼 수 있다.
프리다는 사회적 혼란기인 멕시코혁명의 와중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타고난 성품은 장난기 많은 외향적 성격이었다. 그러나 7살에 찍은 그녀의 유년 시절 사진을 보면 가족과 떨어진 채 나무아래에 서서 어딘가 숨고 싶은 모습으로 나온다. 6살 때 그녀에게 찾아온 소아마비 때문이다. 9달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었던 유년시절의 고독한 병상생활은 자신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작용했다.
이런 외로움과 집착은 작품에도 나타났는데 사고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고자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 심리 상태를 관찰하고 표현했기 때문에 특히 자화상이 많다.
프리다는 걸을 수 있게 되었으나 다리는 자라지 않았다. 아이들의 짓궂게 놀릴 때는 욕을 퍼붓기도 했으나 자존심 강한 프리다에겐 상처가 되었다. 그녀는 다리를 감추기 위해 가는 종아리에 양말을 덧신었고 오른쪽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었다고 한다.

1925년 9월 17일 버스와 열차의 충돌 사고는 그녀의 일생을 바꿔버린 사건이다. 전차에 받힌 버스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프리다는 버스에서 튕겨져 나와 페인트 통을 뒤집어쓴 채 몸에는 쇠막대기가 박혀있었다. 프리다의 상태는 대단히 심각했으며 수술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프리다의 첫 번째 수술이었다. 강철난관은 그녀의 복부를 관통하여 왼쪽 옆구리로 들어가 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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