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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사][근대사]한국근대사 분석 고찰(개항 이후 민란, 개항 이후 화적, 농민군도소의 조직, 근대의식의 성장과 민족운동 전개, 근대문화 발달, 근대정치 전개,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한국 근대사 대표적 사건)

저작시기 2007.05 |등록일 2007.05.22 한글파일한글 (hwp) | 78페이지 | 가격 4,000원

소개글

한국근대사 분석 고찰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개항 이후 민란의 발생과 전개
Ⅲ. 개항 이후 화적의 활동과 지향
Ⅳ. 전주화약 이후 관민상화(官民相和)와 집강소 운영
Ⅴ. 농민군도소의 설치와 그 이념
Ⅵ. 농민군도소의 조직
Ⅶ. 근대 의식의 성장과 민족 운동의 전개
1.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2. 근대적 개혁의 추진
3. 독립 협회의 활동과 대한 제국
4. 항일 의병 전쟁의 전개
5. 애국 계몽 운동의 전개
Ⅷ. 근대 문화의 발달
1. 근대 문명의 수용
2. 근대 교육과 국학 연구
3. 문예와 종교의 새 경향
Ⅸ. 근대정치의 전개과정
1. 개화세력의 민족․정치운동
1) 초기의 정치번혁운동
2) 후기 민주적 정치운동
2. 농민 중심의 민족․정치운동
1) 민족․정치운동으로서의 동학
2) 삼례 민중집회
3) 민족․정치운동으로의 전환
4) 자치기구의 설치
3. 위정척사의 민족․정치운동
1) 위정척사의 개념과 위정척사파의 형성
2) 전근대적 민족․정치운동
3) 무력투쟁
Ⅹ.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1. 개화와 척사의 갈등
2. 갑신정변(1884)
3. 갑오개혁(1894˜1895)
4. 1894년 농민전쟁
1) 농민전쟁의 배경
2) 농민전쟁의 전개과정
3) 농민전쟁의 지향과 역사적 의의
Ⅺ. 한국 근대사의 대표적 사건들
1. 병인양요
2. 신미양요
3. 위정척사(衛正斥邪)
4.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
5.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6. 임오군란(壬午軍亂)
7. 갑신정병
8. 거문도사건(巨文島事件)
9. 방곡령(防穀令)
10.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
11. 집강소(執綱所)
12. 청일전쟁(淸日戰爭)
13. 갑오개혁(甲午改革)
14. 삼국간섭(三國干涉)
15. 을미사변(乙未事變)과 을미개혁
16. 아관파천
17. 독립협회(獨立協會)와 독립신문
18. 광무개혁(光武改革)
19. 러일전쟁
20. 신민회(新民會)
21.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22. 한일의정서(韓日議政書)
23. 을사조약(乙巳條約)
24. 헤이그특사사건
25. 군대해산(軍隊解散)
26. 삼일운동(三一運動)
27.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28. 청산리. 봉오동 전투(靑山里. 鳳梧洞戰鬪)
29. 의열단. 애국단
30. 물산 장려 운동(物産?勵運動)
31. 육십만세운동
32. 신간회(新幹會)
33.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
34. 조선어학회
35. 광복군(光復軍)
36. 토지조사사업(土地調査事業)
Ⅻ. 결론

본문내용

문호개방과 대외통상의 필요성은 이미 북학파 실학자 인 박제가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또 개항전에도 김정희(金正喜), 박규수, 오경석 등 일부 선각자들은 청 의 양무운동과 양무론자들의 저술을 통하여 세계정세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견을 일부 청년들에게 전파하고 가르쳐, 개항과 근대적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였다.
이같은 선각자들에 의해 지도되어 개화운동의 선두에 나서게 된 사람들이 바로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홍영식(洪英植)과 같은 서울양반 가문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외에 위의 선각자들 의 지도는 물론, 청으로의 사행을 통해 서구 근대문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중인 출신의 인사들 중에도 근대적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1878년 충의계라는 개화파의 비밀결사가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비록 자주적 입장에 서 있지는 못했으나 개항을 단행했고, 외국과의 교섭을 행해야 했던 민씨정권은 1880년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하여 대외 통상을 전담하게 하였고, 이와함께 별기군(別技軍)이라는 신식군대를 설치하였다.
1881년에는 청에 영선사(領選使)를 보내어 무기 의 제조, 근대적 자연과학, 외국어를 배우게 하는 한편, 일본에는 신사유람단을 파견하여 명치유신 이후 급속히 발전하고 있었던 근대적 문물을 시찰하게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정책에는 당연히 근대적 문물에 대한 지식 이 있는 인사들이 필요하였으므로 개화파들은 자연히 정부안의 여러 직책에 임용되기에 이르렀다.
개화파들은 개혁사업을 통해 고종에 접근하여 그를 개명시켜 근대적 개혁에 앞장서도록 만들고자 하였고 또 개화파들 은 한성순보(漢城旬報)를 창간하여, 국민들에게 세계정세를 일리고 근대문물에 대한지식을 전파하였다.
개 화파 활동의 가장 큰 목표는 부국강병을 이룩하여, 세계무대에서 열강과 당당하게 맞서 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당시 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었던 봉건적 요소를 척결하고 서구의 문물을 과감히 도입하고자 하였다. 개화 사상의 연원은 이용후생을 주장하던 북학사상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지만 청의 양무운동(洋務運動) 및 일본의 문명개화사상(文明開化思想), 그 중에서 특히 후자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화파는 고종의 개명화 에 노력하며서 여러가지 개혁사업을 벌이는데, 그것이 결국 개화파 주도 및 방식에 의한 개혁을 의미하는 것으 로, 기존 집권층의 반발을 받았다.
더구나 개혁정책에 반발하는 구군인층 및 도시빈민층의 불만이 폭발한 임오군란과 청의개입으로 인한 내정간섭은 개화파의 입지 및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 황에서 개화파가 1884년 시도한 정치적 변혁이 갑신정변(甲申政變)이다.
1884년 겨울 김옥균, 박영효, 홍 영식 등의 개화파들은 자신들이 주도하여 세운 우정국의 낙성식 연회를 이용하여 정치적 변혁을 단행하였다.
즉, 그들은 수구파의 거두인 민영익(閔泳翊)을 살해하고 왕궁을 점령하여 고종을 자신의 수중에 장악하고 개혁정치를 실행할 계획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객관적 조건은 청군이 청불전쟁으로 인해 일부 철수하여 병 력이 감소하였던 것과 일본의 군사적 지원의 약속이었다.
개화파들은 자신들이 양성한 군대와 일본군의 지 원을 받아 왕궁을 점령하였다. 이어 수구파 관료들 을 몰아내고 소외되었던 대원군계 인사들과 함께 연합정권을 성립시켰다. 이러한 와중에서 국정 개혁방안을 발표하였는데, 현재 그 가운데 19개조가 전해지고 있어 그들의 내 정 개혁 구상을 짐작할 수있게 한다. 그 내용은
(1)내각제도의 확립과 군권의 제한,
(2)인민평등권의 확립과 인재의 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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