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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중세도시의 부활과 부르주아(앙리피렌느의 `중세도시의 부활`)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07.05.18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중세사 수업에서 앙리피렌느의 `중세도시의 부활`을 읽고 제출한 레포트입니다.
피렌느의 단절설을 바탕으로 중세도시 형성과 요인 및 주체분석하였습니다.
A+받았습니다~

목차

I. Prologue
II. 중세도시의 대두
1.상업의 부활
2.키비타스와 부르구스
3. 중세도시의 형성
4. 중세도시 형셩의 주역 - 부르주아는 누구인가?
Ⅲ 중세 도시 발달의 의의
IV. 중세 도시의 한계
V. Epilogue

본문내용

I. Prologue
부르주아라는 말은 요새지이자, 도시였던 부르구스에 살던 주민들을 칭하는 용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것은 원래 부르구스에 살던 성벽 안의 구 부르구스 주민들을 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새롭게 부르구스의 외곽으로 이주해온 상인과 도시민들을 칭하는 용어가 부르주아라는 말이다. 나아가 부르주아라는 용어는 상업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도시민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가 된다. 『중세 유럽의 도시(Medieval Cities(1925))』라는 책을 지은 앙리 피렌느는 중세 도시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는데, 그는 이 부르주아들이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꾸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생산력을 시대착오적인 봉건시대의 생산관계가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혁적’인 차원에서 기존체제의 양보를 원했던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부르주아들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그들의 활동은 농노들의 신분해방에 기여했고, 자유주의를 확대시키고, 자본주의의 도입을 앞당겼다. 피렌느의 단절(斷絶)설을 바탕으로 중세도시의 형성과 그를 이끈 요인과 주체를 살펴보고 그것이 지니는 의의와 한계점을 알아보자.

II. 중세도시의 대두
아무리 원시 사회라고 하더라도 안정된 사회에서는 그 사회구성원들에게 집회의 중심지나 만남의 장소가 정해져 있었다. 이런 일정한 장소를 정해야만 했던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군사적인 필요였다. 따라서 보통은 울타리나 혹은 통나무나, 진흙, 돌 등으로 쌓은 성벽으로 둘러져 있었다. 그래서 이런 장소는 보통 평상시에는 비어 있다가 전쟁이 발생하여 가축과 함께 피난해야할 경우에 쓰였으며 부수적으로 종교의식을 거행할 경우 등으로 쓰였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서 과거에는 특별한 경우에나 간헐적으로 활기를 띠던 그 곳은 항상 활기를 띠는 곳으로 바뀌어가고 시장이 열리는 가하면 정치적 사법적인 집회 등도 자주 열리므로 인해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활기가 띠던 곳이 정치적, 행정적, 종교적, 경제적인 중심지인 도시가 된다.
고대 때는 이런 도시가 중심이 되는 국가 체계였다. 그리고 서유럽에서는 이런 도시중심의 체제가 게르만의 침입에도 5세기 이후에도 유지가 되다가 8세기 이후 사회조직이 점점약화 되다가 이슬람의 지중해 진출로 당시의 상업은 불가능하게 되고 도시는 크게 쇠퇴해간다.

참고 자료

앙리피렌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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