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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붕당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7.05.16 한글파일한글 (hwp) | 1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 후기 붕당에 관한 잘못된 일본의 왜곡 비판, 각 붕당의 특징, 전개 과정, 탕평의 한계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목차

붕당을 이루어 정치를 운영하다

1.붕당론을 제기하다(붕당의 주역, 사림의 정계진출)
1)사림의 개념
2)사림정치와 붕당
3)조선적 붕당론

2.당쟁은 왜 일어났는가?

1)일본 학자들의 견해
-시데하라 히로시의 견해
-가와이 히로다미의 견해
-호소이 하지메의 견해
-미지나 쇼에이와 시카다 히로시의 견해
-일본 학자 견해에 대한 반박
2)조선 실학자들의 견해
-이익의 견해
-유수원의 견해
-이중환의 견해
-이건창의 견해
3)광복 이후 학자들의 견해
-이태진의 견해
-정만조의 견해

3.각붕당의 특징

1)각 붕당의 개괄적 구별
2)각 당파가 존경한 대표적 성리학자 분석을 통해 본 각 당파의 특징
-북인 붕당의 모범 `보리밭`의 화담 서경덕
-북인 붕당의 모범 `칼과 방울`의 남명 조식
-남인 붕당의 모범 `물러나는 시내` 퇴계 이황
-서인 붕당의 모범 율곡 이이

4.붕당의 시대적 분류

1)1500년대 초반(동인 대 서인)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
2)1500년대 후반(남인 대 북인)
-군주의 권위가 우위에 있는가, 사림의 공론이 우위에 있는가?
3)인조반정
-사림의 지지를 얻지못한 왕권의 사림의 의한 파괴
-서인 주도 하에 관제 야당으로 남인을 등용
4)인조 효종 현종년간(서인과 남인의 50년에 걸친 붕당정치의 시대)
-정치적 평화를 유지한 제도개혁의 시대
5)16세기 말 숙종 즉위 직전(서인 대 남인)
-신권과 왕권의 치열한 대립
군주와 사대부 집안의 예의는 같은가?
6)1700년대 초반(노론 대 소론 대 남인)
-숙종의 강력한 왕권 강화 의지
학통과 지역과 문벌의 일진일퇴, 환국
7)탕평기
-왕의 권한으로 붕당을 조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미봉책
-탕평의 한계

본문내용

일본 학자들의 견해에 대한 반박

이러한 민족성론은 식민 통치를 합리화할 목적으로 이론화되었다는 점에서,또 당쟁을 사림정치의 구조적인 결과물로서 보지 않고 망국의 원인을 전제하는 선입견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가지기가 어렵다. 단적으로 당쟁이 일어난 것은 조선 후기 200여 년간에 불과한데, 이를 5000년 역사에 뒤집어씌워 민족의 본성 때문이라고 규정한 것을 철저한 편견이 아닐 수 없다. 권력 투쟁은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것이며, 권력 자체가 배타적인 것인 만큼 집권하면 핵심 세력과 소외 세력이 갈려 파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파당이 자자손손 계속되었다는 사실은 어느 모로나 특생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당쟁이 대대로 계속되었던 것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주자학이 국가의 지배사상으로서 널리 보급되어 가족주의적인 연대가 강화되었고, 학통을 중시하다 보니 사우 관계가 절대시되어 분당의 사태가 지속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역사를 사실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역사 연구의 기본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서 좋고 나쁜 측면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어서 선악을 기준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는 없는 법이다. 중앙 집권적 문치주의의 경우가 그렇다. 붓을 든 문신이 고도의 정치 이론과 기술을 가지고 사림정치와 같은 역사상 유례가 드문 정치 체제를 창출한 점이 긍정적인 측면이라 한다면, 그러한 정치 이론과 기술을 자기 당파에 유리하도록 견강부회해 당쟁에 이용한 점은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일제 학자들은 식민 통치라는 목적을 위해 당쟁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과장해 주장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영조와 정조의 나라』푸른역사. 박광용. 1998
『조선시대 당쟁사』1,2 동방미디어. 이성무.2002
『한국사 30 조선중기의 정치와 경제』국사편찬위원회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5 조선후기』솔출판사. 김종수.2002
『통합한국사』고시동네. 정재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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