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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토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5.15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가림토 문자 읽는법

본문내용

[경자 2년(BC 2181), 당시 풍속이 하나 같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백리 되는 나라의 땅에서도 통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이에 삼랑三郞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였다]-<<단군세기>>

환웅이 다스리던 배달국 시대에는 녹도문鹿圖文이라는 문자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위의 <<단군세기>> 본문에서 말하는 진서라는 상형문자이다. 배달국 신시 때에 이미 문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태백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자는 옛부터 있었다. 지금 남해현 낭하리의 암벽에 신시神市의고각 故刻이있다]
[단군 가륵 2년, 삼랑 을보륵이 정음 38자를 만드니 이를 가림다加臨多라고 한다.]

배달국 신시 때부터 있던 문자를 3대 단군 때 수정 보완하여 만든것이 바로 가림토 문자이다. 당시에 새로운 문자를 창제한 사실은 <<단기고사>>에도 기록되어있다. 이 가림토 문자를 신전神篆이라고도 하였는데, 조선조 세종대왕 때 이 가림토 문자를 수정보완하여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창제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세종실록>>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0월 초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으니 그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모방한 것이다.]

한글의 모태인 가림토 문자는 몽고.만주.서역 등 당시 단군조서의 영향력 아래 있던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일본에는 가림토 문자로 된 비석과 문서까지 모두 남아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신대문자神代文字라고 한다. 가림토 문자가 일본을 비롯한 중원의 서쪽인 서역에서까지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최만리등이 올린 상소문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참고 자료

http://blog.daum.net/phalac/3813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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