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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정당이 1960.7.29 선거에서 참패한 이유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5.15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600원

소개글

◈ 여 는 글

1960년 4.19민중봉기는 이남 사회의 변혁운동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어놓았다. 53년 이후 정치경제적, 민족적 모순의 심화 속에서 민중들은 자주, 민주, 통일의 3대 과제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반독재민주화투쟁으로 출발한 4.19민중봉기는 급속하게 민족자주운동, 조국통일운동으로 발전해 간다.

진보당 해산 후 이승만 정권 하에서 조직적인 정당 재형성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던 진보세력들은 1960년 4.19를 맞아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여운형의 근로인민당 잔류세력, 조봉암의 진보당,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 서상일의 민주혁신당, 조소앙의 사회당, 김구의 한국독립당 등 진보세력으로부터 중간세력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의 탄압을 견뎌낸 모든 혁신세력들이 4.19 직후부터 진보정당건설을 시도하게 된다.

목차

◈ 여 는 글

◈ 본 론
1. 진보정당운동의 전사(前史)
(1)진보당
(2) 제 2 공화국의 혁신정당
(3) 군사독재정권 하의 혁신정당

2. 제5대 국회의원선거(1960년7월29일)

3. 혁신정당의 실패 배경
(1) 주체형성의 문제
(2) 노동운동의 문제
(3) 정치환경의 문제

4. 결 과

◈ 결 론

▣ 참 고 ▣

본문내용

◈ 여 는 글

1960년 4.19민중봉기는 이남 사회의 변혁운동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어놓았다. 53년 이후 정치경제적, 민족적 모순의 심화 속에서 민중들은 자주, 민주, 통일의 3대 과제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반독재민주화투쟁으로 출발한 4.19민중봉기는 급속하게 민족자주운동, 조국통일운동으로 발전해 간다.

진보당 해산 후 이승만 정권 하에서 조직적인 정당 재형성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던 진보세력들은 1960년 4.19를 맞아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여운형의 근로인민당 잔류세력, 조봉암의 진보당,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 서상일의 민주혁신당, 조소앙의 사회당, 김구의 한국독립당 등 진보세력으로부터 중간세력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의 탄압을 견뎌낸 모든 혁신세력들이 4.19 직후부터 진보정당건설을 시도하게 된다.

사회대중당은 1950년대의 진보당 간부들이 주축이 되어 조봉암의 진보당 이념과 정강정책의 대부분을 계승하여 1960년 5월 13일, 발기대회를 가진데 이어 6월 17일 창당준비대회를 조직하고 서상일, 윤길중 등을 간부로 선출하여 창당 작업에 착수, 그 해 11월 24일에 출범한다.

진보당 활동을 벌였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사회대중당이 창당되고, 그밖에도 ‘사회당’, ‘혁신당’ 등이 건설된다. 당시에 진보정당들은 ‘혁신정당’이라고 불리워졌다.

사회대중당은 민족자주에 기초한 민주주의적 통일국가의 창건을 당면과업으로 하면서 민중들의 대중적 진출을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운동에로 이끄는 활발한 조직정치활동을 벌였다.

참고 자료

www.21corea.org 21세기 코리아 연구소
『 한국의 정당정치 』-제1공화국부터 제5공화국까지 체계론적 분석- 2005. 호광석
『 지난 10년간의 진보정당운동과 새로운 도전 』 노회찬(국민승리21 정책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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