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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농촌사회의 모순과 실학자의 사회개혁론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07.05.15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사레포트

목차

Ⅰ. 조선후기 농촌사회의 모순과 실학자의 사회개혁론
1. 농촌사회의 모순
2. 실학자의 사회개혁론
Ⅱ. 외세의 침략과 민중의 자주적 구국운동
1. 동학농민운동
2. 의병전쟁

본문내용

1. 농촌사회의 모순
조선후기 사회 여러 부문의 발전과 변동은 19세기에 들어와서 더욱 빨라졌다. 그러나 당시 체제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면서 사회모순은 심화되고 결국 농민저항으로 변화한다.
이 시기 사회모순은 토지와 조세를 중심으로 한다. 토지를 둘러싸고 농촌 내부 각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당시 농촌은 소수의 지주와 어느정도의 자작농, 그리고 다수의 소작농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지주와 소작인간의 수탈과 저항이 빈번하였다.
한편 이 시기 과중한 조세는 농민들을 매우 괴롭혔다. 조선후기의 조세는 전정, 군정, 환곡의 삼정이 중심이었다. 전정은 기존의 전세에 신설된 여러 세목과 부과세까지 합쳐져 40여가지나 되는 세목이 토지에 매겨졌다. 이것을 도결이라 하였다. 도결은 수납하기 편리하고 화폐로 환산하여 結價로 받기도 하였다. 전정은 소작농에게 떠넘겨졌고 관리나 서리들의 농간과 수탈도 늘어났다. 균역법으로 형식적으로는 양민의 부담이 1년에 1필로 줄어들었으나, 양인농민이 크게 줄어들면서 한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의 몫을 내야하는 첩역현상이 일어나고 심지어 백골징포, 황구첨벙, 인징, 족징 등 여러 가지 폐단이 일어났다. 환곡은 농민에 대한 진휼에서 시작되었으나 중앙과 지방관청의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환곡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농민을 상대로한 고리대가 되어갔다. 특히 정약용이 환곡의 백징 폐단을 폭로하였듯이 곡식을 주지 않고 이자만 거두어가는 현상까지 일어나 이제 환곡의 기능은 진휼보다는 세금으로서의 역할이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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