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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민족주의 역사서술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4.2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19세기 후반 각 국의 민족사적 역사서술특성에 대한내용을 상세히 조사하여 요약한 글입니다. 이글을 바탕으로 발표수업도 하였으며 교수님으로 부터 레포트 점수 A+를 받았습니다. 이글을 구입하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프랑스 - “실천학부”의 창설,『역사학지』의 창간과 역사서술

2. 영국 - 옥스퍼드 학파와 케임브리지학파

3. 독일 : ‘ 신랑케학파 ’

4.이태리

5. 미국 : 미국사서술과 비판적 연구

본문내용

1. 프랑스 - “실천학부”의 창설,『역사학지』의 창간과 역사서술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역사가들이 학문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생활과 일반 교양층에도 큰 영향 끼침 - 기조 ,뛰에르 대표적
-1848년 이전 까지는 독일의 역사연구방법이 별로 인정 받지 못함
-19세기 중엽부터 체계적,학문적인 연구방법을 도입해야한다는 견해 성숙 - 빅토르 뒤르의 주도 아래 성인학교인 고등연구원 실천학부(1868)가 설립

․실천학부
- 교사와 학생을 훈련시키기 위해 설립, 실제적인 연습을 통해 연구방법 훈련
-수학과 물리과, 화학, 생물학, 역사학과 언어학의 4개의 분과로 이루어 짐
- 이 학교의 설립은 프랑스교육사에 획기적인 일, 특히 역사서술과 역사교육에 큰 영향 줌
-이전에 있던 문서수집회에 이어 실천학부의 역사분과에서는 본격적으로 역사연구방법론을 훈련

․역사학지
- 뒤르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고 모노가 주도적 역할
- 첫호에 모노가 기고한 「16세기 이루 프랑스에 있어서 역사학의 발전」에는 역사학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논설이자 미래전망을 표현한 것
- 모노에 의하면 우리는 역사학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불행히도 프랑스는 정규적인 발전 이루지 못함
→ 이유 ; 프랑스에 학문적인 전통이 없고, 또 기조 띠에르 처럼 정치적, 종교적 정열이 너무 자주 나타났기 때문
- 역사학지는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입장도 취함이 없이 논쟁적이 아닌 다양한 견해들은
수용하겠다는 것
→역사학지는 ‘적극적인 학문’“자유러운 토론”위한 광장이 될 것이지만, 사실들의 영역에만 국한 될 것이라고 언명
- 역사학지 창간에서 주목할 점은 학문적인 방향을 랑케적인 태도를 표명했다는 점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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