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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조선시대 호적제도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7.04.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레포트 형식이 아닌 자료 조사내용정리 된것입니다..

목차

호적제도의 역사
호적제도의 운용
조선시대 호적 작성 절차
호구파악의 보조수단
호적의 기재 내용
호적의 용도와 기능

본문내용

조선시대 우리조상들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어떻게 파악되고 통제되며 살아왔는가? 현재 남아있는 많은 호적대장과 호구단자, 준호구, 호패 등을 통하여 우리는 조선시대 국가권력에 의한 백성통제의 여러 면을 볼 수 있다.

중세 봉건국가는 백성들을 몇 개의 신분층으로 나누어 통제하였다. 이에 따라 호적을 작성하는 방법이라든가 호패의 재질, 모양, 크기도 각각 달랐다. 조선시대에는 “예는 서민에 내려가지 않고 형벌은 사대부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말에서 보다시피, 신분에 따라 적용되는 규범이 엄격히 구분되는 신분제 사회였다. 이는 신분에 따른 사회통제 방식의 차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호적은 일반 민중생호라에 가장 필수적인 법적 장치였다. 어떤 형사, 민사사건이 일어나서 사건을 심리할 때도 먼저 그 사람의 호구가 제시되지 않으면 접수가 되지 않았다. 과거시험에 응시할 때도 그 지역의 호적에 올라 있지 않으면 응시할 수 없었다. 이만큼 호적은 백성들의 일상행활을 규제하는 장치였다.
이 글을 통하여 우리는 국가가 인민을 통제하는 장치였던 호적제도를 통하여 어떻게 백성들을 규제하였고, 이를 통하여 백성들의 일상생활은 어떻게 규제되었는가를 이해해 보기로 한다.

호적제도의 역사
국가에서 인민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호적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도입되어 작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구 파악 문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라장적’이다. 신라장적은 ‘신라촌락문서’라고도 불리는데, 1930년대에 이 문서가 발견된 이래, 이 문서를 이용하여 신라시기의 사회구조나 경제관계를 밝히는 논문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아직 이 문서의 성격 자체를 규명한 글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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