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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구휼제도

저작시기 2007.04 |등록일 2007.04.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한국 전통의 구휼제도에 관한 것입니다. 열심히 보아 주세요

목차

제목 : 한국의 구휼제도
I. 들어가는 글

II. 역사속의 구휼제도
1. 고조선시대의 구휼제도
2. 삼국시대의 구휼제도
3. 고려시대의 구휼제도
4. 조선시대의 구휼제도

III. 맺는 글

본문내용

현재 사회복지제도나 구휼제도에 대한 조사는 주로 서구의 역사에 따르고 있다. 사회복지역사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아도 주로 영국의 구빈법, 교회의 십일조 등에 대해서만 다룬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럼 한국 땅에는 그런 역사가 없었던 것일까? 국가가 백성을 지키고 돕는 것은 한국의 전통사상 중에 하나이므로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 남아있는 사회복지제도는 한국의 전통과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이런 생각 하에 한국사 속에 있는 한국만의 사회복지제도에 대해서 조사해 보게 되었다.

Ⅱ. 역사속의 구휼제도

1. 고조선시대의 구휼제도.
특별히 기록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27대 두밀 단군시대에 큰 가뭄 뒤에 큰 비가 쏟아져 백성들을 위해 명을 내려 국가에서 창고를 열어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란 책 자체가 위서라 하여 믿기 힘든 점이 있다. 하지만, 그 뒤 삼국이나 통일신라시대에도 국가가 창고를 열어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들이 많은 만큼, 고조선시대라 하여 이런 일이 없었다고는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삼국시대 초 기록을 보면 고구려에서 백성구휼을 제도화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것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는 없다. 아마도 고조선시대부터 백성구휼을 국가가 해주기 시작했고, 이것이 삼국시대에 이르러 제도로 정착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있는 일이 아니라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만 일시적으로 도운, 아주 원시적 형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이 관습으로 자리잡고, 제도화 된 것은 짐작컨대 훨씬 후대의 일일 것이다.

2. 삼국시대의 구휼제도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제 2대 남해왕 15년(서기 18년)에 백성들이 한재(旱災)로 인한 기근을 당함에 왕이 명령을 내려 국고를 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이외에도 신라 제5대왕인 유리왕조에 국왕이 국토를 순례하다가 한 노파가 기한(飢寒)에 못 이겨 죽어가는 것을 보며 탄식하며 고아, 홀아비, 홀어미, 자식없는 이들, 병자로서 돌볼 이가 없는 이들을 위문하여 식량을 나누어 주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와 관련해서는 그다지 기록이 없다. 몇 남은 기록들도 백성들이 굶는데도 왕이 방관했다는 기록은 꽤 많아도 구휼했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었다. 짐작컨대,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백제는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나라이다. 그 덕에 엄청난 흉년이 들지 않는 이상은 먹을 것이 부족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다지 기록이 없는 것일 것이다. 또 하나는 통일이 신라에 의해 이루어져서 의도적으로 백제의 당시 정치와 사회상황을 나쁘게 기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조선후기 환곡제개혁연구, 송찬섭저, 서울대학교출판부
한국사24권 조선 초기의 경제제도, 국사편찬위원회, 탐구당문화사
삼국사기, 구인환역, 신원문화사
조선전기사회복지정책연구, 이민수, 혜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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