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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회의 성격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4.15 | 최종수정일 2016.06.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0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우리는 흔히 고려시대 부터를 중세역사의 시작이라 부른다. 분명 고려시대는 앞선 통일신라 시대와는 분명히 다른 제도와 문화가 등장하며, 새로운 경제형태인 지주-전호제의 모습도 나타난다. 하지만 고려를 중세라 부르는 점에서는 너무도 많은 학설과 논쟁이 진행중이며, 심지어 역사의 시기구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이처럼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고려시대는 단지 새로운 왕조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벗어나, 고대의 역사와 문화에서 벗어나고 나아사 조선의 역사를 여는 중간지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고려 시대의 역사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고려초의 건국 시기의 사회상에 대해 알아보고, 고려가 어떤 모습으로 나라를 운영하였는지에 대한 고려의 통지제도, 그리고 나라의 살림을 꾸리는 위한 경제제도, 그리고 고려사회의 성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우리 역사의 중간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역사를 어떻게 되풀이 하였는지, 그리고 나아가 고려 후의 시기에는 또 어떻게 고려의 역사를 답습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해 볼수도 있지 않을까? 이는, 혼란한 오늘날의 이 시기를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신라말(新羅末), 고려초(高麗초)의 사회상(社會相)

Ⅲ. 고려사회의 통치제도
1.) 고려사회의 중앙 통치제도
2.) 고려사회의 지방 통치제도
3.) 고려사회의 군사조직
4.) 고려사회의 교육제도

Ⅳ. 고려사회의 경제
1.) ‘전시과(田柴科)’ 체제(體制)의 토지제도(土地제도)
2.) ‘전시과(田柴科)’ 체제(體制)의 붕괴(崩壞)
3.) ‘고려(高麗)’ 수취제도

Ⅴ. 고려시대의 사회정책 

Ⅵ. 고려사회의 성격
1.) 관료제 및 가산관료제설과 그에 대한 비판
2.) 귀족․귀족제의 개념
3.) 귀족제사회설의 논거

Ⅶ. 결 론   

본문내용

Ⅰ. 서 론
우리는 흔히 고려시대 부터를 중세역사의 시작이라 부른다. 분명 고려시대는 앞선 통일신라 시대와는 분명히 다른 제도와 문화가 등장하며, 새로운 경제형태인 지주-전호제의 모습도 나타난다. 하지만 고려를 중세라 부르는 점에서는 너무도 많은 학설과 논쟁이 진행중이며, 심지어 역사의 시기구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이처럼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고려시대는 단지 새로운 왕조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벗어나, 고대의 역사와 문화에서 벗어나고 나아사 조선의 역사를 여는 중간지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고려 시대의 역사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고려초의 건국 시기의 사회상에 대해 알아보고, 고려가 어떤 모습으로 나라를 운영하였는지에 대한 고려의 통지제도, 그리고 나라의 살림을 꾸리는 위한 경제제도, 그리고 고려사회의 성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우리 역사의 중간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역사를 어떻게 되풀이 하였는지, 그리고 나아가 고려 후의 시기에는 또 어떻게 고려의 역사를 답습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해 볼수도 있지 않을까? 이는, 혼란한 오늘날의 이 시기를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Ⅱ. 신라말(新羅末), 고려초(高麗초)의 사회상(社會相)

8c, 신라 말 혜공왕 이후 귀족계급 내부에 왕위쟁탈을 위한 끊임없는 알력과 군사적 반란이 일어났고, 한편으로는 봉건적 억압과 착취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투쟁이 차츰 표면화되어 9c말엽부터 광범한 농민폭동으로 발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에서는 호족을 중심으로 봉건세력이 성장하였다. 이들은 9c말엽의 혼란기에 촌락을 중심으로 일정한 지역을 사영지와 같이 지배하고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하여 소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견훤은 후백제, 궁예는 태봉을 창건하여 정복을 위한 공방전을 반복하면서 신라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무렵 신라 봉건국가는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기고 경상도일대를 지배하여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이처럼, 8c~9c말엽에는 신라의 왕위를 둘러싸고 무열왕계와 내물왕계의 왕위 쟁탈전과 귀족상쟁과 연관되어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또한 연이은 흉년과 사회
혼란은 농민반란을 제기 시켰다. 신문왕때 폐지되었던 녹읍제가 다시 경문왕때에 이르러 부활함으로써 호족들의 세력을 성장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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