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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민주정, 로마 공화정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7.04.14 | 최종수정일 2016.04.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A+ 받은 자료 입니다.
적절히 손보셔서 좋은 결과 있으시길,

리포트라기 보다..
그리스 로마 당대를 묘사한 것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목차

그리스 민주정치 -6세기
그리스 민주정치 -5세기
포에니 전쟁
로마 공화정 -전기
로마 공화정 -후기

본문내용

민주정의 기원은 아테네이다. BC7세기 아테네는 대지주(토지귀족), 자영농민, 상공업자의 귀족정으로 사회구조를 결정하는 귀족정치 시기였다. 이들 시민과 노예의 중간계층이 나타나면서 고리대금업으로 인한 부채가 늘어나고 노예의 수도 증가했다. BC7세기 말 군사력 감소 등 사회갈등이 증가하자 아테네 최고의 성문법인 드라콘의 법에서 부채로 인한 인간의 자유 상실을 인정하여 채권자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혼란이 증가했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시작은 기원전 594~593년 솔론의 개혁이다. 귀족과 평민 사이의 부채문제 해결이 주요 관건이었으며 여기에 정치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가 더해졌다. 첫째, 부채문제이다. 부채를 말소하고 민회참여권, 시민권을 부여하는 세이사크테이아로 인해 토지귀족의 반발이 심화되었다. 이의 대안책으로 둘째, 금권정치라고 하여 재산소유에 따라 정치적 권리를 다르게 하였다. 전체 1신분에서 4신분으로 나누어지는데 1신분은 전형적 토지귀족(대지주), 중소지주인 2신분은 말의 소유자, 3신분은 소의 소유자이다. 이들 모두는 자영농으로 총 9000명으로 이루어진다. 마지막 4신분은 빈농/시민으로 12000명으로 구성된다. 1신분은 파르테논 신전을 담당하는 후보에 오르는 것이 가능했고, 이들 포함 2신분까지는 9인 아르콘(집정관)의 후보가 가능했다. 나아가 3신분까지는 400인 위원회에 참여가 가능했다. 1신분에서 마지막 4신분까지는 민회참석이 가능했다. 하지만 591년 이 개혁은 실패를 하게 되는데 이유는 추진세력의 부진과 부채만 말소해주고 고용창출에 대한 병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공업화와 산업화 이전 시대였기 때문에 일자리 마련보다는 상층토지귀족이 가지는 토지에 대한 배분(토지개혁)으로 대신했어야 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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