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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펠로폰네소스전쟁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4.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700원 (30%↓) 1,000원

소개글

펠로폰네소스전쟁특성에 대한내용을 상세히 조사하여 요약한 글입니다. 이글을 바탕으로 발표수업도 하였으며 교수님으로 부터 레포트 점수 A+를 받았습니다. 이글을 구입하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들

2. 제1기(431~421 B.C.)

3. 제2기(415~404 B.C.)


※1.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다른 원인들)

※2. 아테네의 패배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1.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들
서부 해역에 있는 아테네의 존재는 코린트인들을 항상 괴롭혔는데, 코린트는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스파르타의 주요 동맹국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시대의 초기에 아테네는 콜르키라섬 사람들과 아주 유익한 관계를 개발해 냈는데, 이는 아주 일찍이 코린트에 의해 식민지화되어 있었던 곳이다. 코린트와 콜르키라 사이가 악화되어 전쟁을 낳게 되고 433 B.C. 주요 해상전투가 일어났을 때 아테네는 콜르키라의 편을 들게 되었다. 이는 이오니아해와 서부지역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에게해의 서북구석에 있는 칼키디케(Chalcidice)에 자리잡은 포티다에아(Potidaea)가 델로스동맹의 회원국이 되었는데 이는 이전에 코린트의 식민지였다. 포티다에아가 뒤에 아테네의 계속된 지배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코린트는 반대로 이를 도왔다. 코린트의 바로 반대편 해협의 아티카의 끝에 자리한 메가라(Megara)는 코린트와의 분쟁으로 펠로폰네소스연맹을 떠나서 아테네동맹에 가입하였다. 얼마 후에 다시 태도를 바꾸어 메가라는 아테네측을 떠나 펠로폰네소스동맹쪽으로 되돌아갔다. 그레 대한 보복 조처로, 페리클레스는 메가라는 어떠한 델로스연맹의 회원국과도 교역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는 메가라에게 격심한 타격을 주는 조치였으므로 메가라는 펠로폰네ㅗ스연맹의 회집을 요구하면서 스파르타인들에게 아테네에 선전 포고를 하도록 설득하였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이 어떠한 탕협도 거부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므로, 곧 지루하고 결국 몰락을 재촉한 전쟁이 곧 시작되고 말았다.

2. 제1기(431~421 B.C.)
펠리클레스는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연맹과의 전면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느꼈던 것 같고, 그가 이끌어 가는 동안 승산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아테네는 스파르타인들보다는 더 전쟁에 대한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아테네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 든 엄청난 경비와 근래에 포티다에아를 포위하는 데 경비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테네 금고에는 600탤런트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테네 해군은 무적

참고 자료

1. 서양고대의 역사와 문화, Henry C. Boren 저․이석우 역, 탐구당, 1999

2. 서양문명의 역사Ⅰ(-역사의 여명에서 로마제국까지), 에드워드 맥널 번즈․로버트 러너․스탠디시 미첨 씀․박상익 옮김, 소나무, 1995

3. 새로쓴 서양사 총론1, 차하순, 탐구당,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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