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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7.04.1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역사속의 왕> 수업시간에 제출했던 레포트입니다.

선덕여왕의 즉위와 배경, 업적 등을 담은 자료입니다.

A+받은 레포트입니다^^

유용한 자료가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Ⅰ. 서론
- 선덕여왕의 즉위와 그 배경

Ⅱ. 본론
1. 찬란한 문화유산
2. 탁월한 인재등용
3. 지기삼사설화

Ⅲ. 결론
- 21세기가 배워야할 선왕의 모습

본문내용

Ⅰ. 서론 - 선덕여왕의 즉위와 그 배경

신라 제27대 왕이었던 선덕여왕(632~647)은 성 김(金), 휘(諱) 덕만(德曼), 호 성조황고(聖祖皇姑). 시호는 선덕이다. 진평왕(眞平王)의 맏딸로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 김씨이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상 여왕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647)외에 두 명이 있었다. 제28대 진덕여왕(647~654), 그리고 통일 신라 말기에 해당하는 제51대 진성여왕(887~897)이다. 이 세 여왕은 모두 신라의 여왕이다. 고구려, 백제와는 다른 신라의 정치, 사회적 특징은 유일하게 신라에서만 여왕의 존재를 낳게 한다. 먼저, 그 이유가 바로 신라사회에서만 존재했었던 골품제의 영향이다. 7세기 초엽 신라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었다. 원래 신라의 왕위는 부모 양쪽이 모두 성골이어야만 하는 극소수의 성골들에게만 허락된 자리였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으로 성골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7세기에 들어서면 왕위계승 자격을 가진 성골은 진평왕의 딸 덕만(후일 선덕여왕)과 조카딸 승만(후일 진덕여왕)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성골남자가 없다는 것은 성골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 성골 다음 계급인 진골 남성 중 유력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그러나 화백회의는 당시 유력한 왕위계승 후보이던 진골의 김용춘을 왕으로 추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평왕의 딸 덕만을 선덕여왕으로 추대하였다. 이처럼,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골품제의 영향이 컸다. <삼국유사>왕력편 선덕왕조에서, 선덕여왕이 여성의 신분으로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즉, ‘성골의 남성이 없기 때문에 여왕이 즉위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신라만이 갖는 특수한 신분제도인 골품제는 이 땅에 최초로 여성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 셈이다. 또한 선덕여왕이 여성의 몸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통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현재 경주의 서쪽에서 시내를 조용히 바라보는 선도산은 신라가 세워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신라인의 어머니로, 신라인의 국모로서 높이 숭앙 받아오고 있었다.

참고 자료

․ 조범환, 『우리 역사의 여왕들』, 책세상문고 (2000)
․ 박순정, 『선덕여왕을 클릭하면 큰 지혜가 보인다』, 오늘 (2000)
․ 황원갑, 『한국사를 바꾼 여인들』, 책이 있는 마을 (2002)
․ 일 연, 『삼국유사』, 예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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