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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정도전의 정치행정사상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4.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설계자였다(한영우 1999). 그가 차지하는 정치와 행정에 관련한 사상사적 위치는 다른 인물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의 구상 가운데서 행정에 관한 사상을 구명하는 연구는 단편적이거나 일천하다 정도전에 관한 연구는 역사학계의 경우는 이병도, 이상백 등의 연구가 선구적이라 할 수 있겠으나 아무래도 한영우의 <鄭道傳思想의 연구>(서울대출판부,1973)가 종합적 연구의 결정판이라 하겠다. 정치학계에서는 최상용, 부남철, 김석근, 박홍규, 최연식 등이 연구를 선도하고 있고, 철학계에서는 김용옥, 행정학계에서는 박병련 등의 연구가 있다. 최근 국사학자와 정치학자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정치가 정도전의 재조명>(경세원, 2004)은 역사학자와 정치학자들이 학문적 관점을 교류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 하다.
. 정도전에 대한 이해는 전통시대의 부정적 이해에서 현재의 긍정적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 간격은 매우 넓다.
그러나 그의 혁명적 사상은 그가 살았던 시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고유한 문제의식의 맥락 속에서 이해(김용옥 2004. 14)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목차

I. 머리 말
II. 高麗王朝의 行政에 대한 비판과 儒敎化 企劃
III. 정도전 행정사상의 기본구성
IV. 맺는 말

본문내용

I. 머리 말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설계자였다(한영우 1999). 그가 차지하는 정치와 행정에 관련한 사상사적 위치는 다른 인물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의 구상 가운데서 행정에 관한 사상을 구명하는 연구는 단편적이거나 일천하다. 정도전에 대한 이해는 전통시대의 부정적 이해에서 현재의 긍정적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 간격은 매우 넓다.
그러나 그의 혁명적 사상은 그가 살았던 시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고유한 문제의식의 맥락 속에서 이해(김용옥 2004. 14)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14세기 말 고려에서는 정치체 전체의 정신과 정치에 대해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반성이 전개되었으며, 이 시기의 변동은 세계관의 변혁과 직접 연관되어 있었고(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5, 196), 그 중심에 성리학이 있었다. 정도전은 새로이 도입된 성리학의 비전에 따라 귀족위주로 전개된 정치와 행정에 관한 고려적 사유를 극복하고 ‘백성(民)’을 정치와 행정의 중심으로 새롭게 부각시키는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다. ‘민본’사상은 유교적 정치와 행정의 고전적인 프레임이긴 하였어도 역사적 과정에서 ‘현실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정도전은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의 가르침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당대 일급의 유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신유학을 매개로 한 교유를 통하여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였다(문철영 2005, 149-163). 그는 누구보다도 신유학의 노선에 투철하였다. 고려 말의 신유학자들-특히,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 조차도-불교와 신유학을 대척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까지 보지 않았음에 비하여, 정도전은 적극적으로 신유학의 위상을 불교와 대립되는 위치에 두고자 했다. 그의 ‘벽이단(闢異端)’노선은 매우 철저했으며, 고려왕조를 부정하고 조선왕조를 건설하는 강력한 사상적 에너지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도전의 재상중심의 정치론은 어린 세자 이방석을 지지하면서부터 ‘왕조탈취’의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이방원(태종)에 의해 ‘역적’의 오명을 쓰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이방원의 ‘군주중심의 정치’와 정도전의 ‘재상중심의 정치’가 충돌한 것이었다. 이것은 훗날 조선의 정치와 행정을 관류하는 하나의 중심이슈가 된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건설과 정도전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정도전 역적 만들기’라는 정치적․ 역사적 사업을 철저히 관철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잘못 조선왕조 개국의 정당화 논리에 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영웅호걸들이 구름이 용을 따르듯이 일어나듯이 일제히 일어났으나, 선생과 비교할만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비록 마침에는 차질이 있었으나, 그 공로와 과실은 족히 서로 덮을 만 하였다.”

참고 자료

<論語>
<韓非子>
<史記>
<高麗史>
<朝鮮王朝實錄>
<三峰集>(鄭道傳)
<退溪集>(李滉)
<南冥集>(曺植)
<栗谷全書>(李珥)
김용옥(2004).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통나무.
朴忠錫(1982). <韓國政治思想史>. 삼영사.
삼봉정도전선생기념사업회(2004). <정치가 정도전의 재조명>. 경세원.
全樂熙(1995). <東洋政治思想硏究>. 단국대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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