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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명성황후와 을미사변 그외 주변 인물들(고종,대원군)

저작시기 2005.04 |등록일 2007.04.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을미사변은 한국근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명성황후와 을미사변 그리고 그녀와 시아버지 대원군간에 갈등 등을 다루었습니다.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레포트를 제출 하실 분들에게 좋은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목차

제 1장. ‘명성황후’ 란 누구인가?

제 2장.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제 3장.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갈등

제 4장. 흥선대원군과 고종

제 5장.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

본문내용

제 1장. ‘명성황후’란 누구인가?

․본관 : 여흥(驪興)
․성 : 민씨(閔氏)
․출생 : 1851년(철종 2년) 경기도 여주(驪州)

명성황후는 1851년 여성부원군 민치록의 딸로 1851년 태어났다. 여덟살에 부모를 잃어 천애고아의 신세였던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부인 민씨의 천거로 왕비로 간택돼 1866년 한 살 아래인 고종과 혼인했다.

불우한 처지의 명성황후가 왕비로 간택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집안이 빈한했던 덕이었다. 외척의 세도정치에 왕족으로서의 체면도 차릴 수 없었던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비로 외척의 영향력이 가장 적은 집안의 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7년을 넘기지 못했다. ( 명성황후가 1897년부터 대원군의 실각을 주도, 그리고 고종의 후궁인 궁인 이씨에게서 완화군(完和君)이 출생하자 이를 기뻐하는 흥선대원군과 대립하여, 흥선대원군의 반대파를 규합하는 한편, 민씨 척족을 정부 요직에 앉히고 세력 기반을 다져 나감. ) (중략)

제 2장.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

․을미사변 : 1895년 10월 8일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우의 지휘 아래 일본군과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

갑오개혁 후 조선 내정에 깊이 간여하게 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친일내각을 형성에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때 프랑스․러시아․독일 등 의 이른바 3국 간섭으로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이 차지한 랴오둥반도를 포기하게된다. 이에 국제정세를 파악한 조선정부는 일본세력에서 벗어나고자 급격히 친러적 방향으로 기울었다. 왕실과 친러파들은 러시아공사 K.웨베르와 접촉하면서 친일내각을 무너뜨리고.....(중략)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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